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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향기나는 교회</title>
		<link>https://duftendekirche.kr</link>
		<description>향기나는 교회</description>
		
				<item>
			<title><![CDATA[창세기 39:1-23 &lt;여호와께서&gt;]]></title>
			<link><![CDATA[https://duftendekirche.kr/?kboard_content_redirect=112]]></link>
			<description><![CDATA[9.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 창 39장은 야곱의 가문을 다시 일으키는 씨앗인 요셉의 이야기입니다. 
요셉은 유다가 가나안에서 원주민들의 삶에 동화되어 하나님을 떠나 악을 행함과 대조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버림을 받고 팔려 이집트에 노예가 되었습니다. 
요셉은 애굽 바로의 친위대장, 바로의 최측근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인정을 받아 그 집의 가정일을 관리하는 집사가 되었습니다. 
후에 여주인의 유혹을 뿌리치다가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애굽 최고 권력자의 아내를 범하려했다는 혐의를 받는 죄인치고는 형량이 너무 가벼운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쨌든 요셉은 감옥에 갇히고 그곳에서 간수장의 신임으로 죄수들을 관리하는 업무를 수행하게 되었습니다.

보디발은 요셉을 신뢰하면서 가정의 모든 일을 맡기지만 자기의 음식만은 간섭하지 못하게 합니다. 
음식, 식탁은 정결과 연결되어있기 때문입니다. 
후대에 이방인들과 식탁을 함께하는 것을 꺼리고 손과 발을 씻고 귀를 씻는 유대인들의 정결례를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정한 히브리인에게 애굽의 고관대작인 보디발의 음식을 맡길수 없었던 것입니다(창43:32). 
이런 의미에서 왕실 고관이 애초부터 히브리 소년인 요셉을 노예로 사고, 그를 전적으로 신뢰하게 된 일은 일반적이지는 않습니다.

39장에는 "여호와"께서라는 호칭이 8회나옵니다. 
시작부터(2) 마지막(23)까지 여호와로 시작해서 여호와로 마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시고, 여호와께서 요셉을 형통하게 하시고, 여호와께서 요셉을 축복하셨습니다.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십니다. 
보디발의 집에 들어감도 여호와의 섭리입니다.

여호와께서 함께하심은 항상 우상향 상승곡선은 아닙니다. 
유혹과 고난이 있습니다. 철부지 요셉, 채색옷을 입고 마냥 뽐내고 안하무인과 같던 요셉을 훈련시키기 위한 과정이 있습니다.
 통과해야 할 연단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는 보암직도하고 먹음직도 한 선악과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지만 요셉은 여주인의 유혹을 물리쳤습니다. 
여호와 앞에서 죄를 짓지않기 위해서 요셉은 그 유혹을 뿌리치고 모함에 빠져 감옥에 갇히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은 언제나 평안한 우상향곡선이 아닙니다.
때로는 아니 종종 하향곡선입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연단의 시험에 합격하였습니다. 
비록 감옥에 갇히고 고단한 삶이지만 그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안에 거하게 된 것입니다. 
&lt;여호와께서&gt; 함께하시는 고단하지만 형통한 삶의 길에 있습니다.

♧ 연단하시는 하나님, 오늘 우리에게 오는 유혹들을 이겨내게 하소서, 
&lt;어찌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요&gt; 요셉의 이 말이 생각나게 하소서,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안에 머물게 하소서, 성령님 강하고 담대하게 하소서, 아멘.]]></description>
			<author><![CDATA[향기나는교회]]></author>
			<pubDate>Tue, 12 May 2026 11:55:57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duftendekirche.kr/?kboard_redirect=1"><![CDATA[QT]]></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창세기 38:1-30 &lt;메시아의 계보, 유다&gt;]]></title>
			<link><![CDATA[https://duftendekirche.kr/?kboard_content_redirect=111]]></link>
			<description><![CDATA[26.유다가 그것들을 알아보고 이르되 그는 나보다 옳도다 내가 그를 내 아들 셀라에게 주지 아니하였음이로다 하고 다시는 그를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더라

◇ 창 38장은 야곱의 아들 유다와 그의 아들들, 며느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과 멀어져간 그가 벌인 처참한 불의한 행동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유다는 형제들을 떠나 가나안 사람들에게로 들어갔습니다. 
그곳에서 가나안 사람의 딸을 보고 취하여 아들들을 낳고 가정을 꾸렸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가나안 사람들 속으로 더 깊숙히 들어갔습니다.

유다의 첫째 엘은 후사를 잊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엘의 죽음의 원인은 하나님 보시기에 악하였기 때문입니다(7). 
여호보시기에 악하였다는 표현이 인간이 보기에는 악하지 않았다는 말로 들립니다. 
가나안 사람들 사이에서는 그저 일상적으로 받아들여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허용하고 용납한다고 해도 하나님은 용납하지 않으셨습니다. 

유다가 가나안으로 들어가 악함/죄에 대하여 점점 무뎌지고 결국에는 자신도 가나안사람들에 동화되어버린 것입니다. 
냄비 속에서 서서히 데워지는 물에 익숙해지다가 죽어가는 개구리 꼴이 유다의 모습입니다. 

셋째 셀라를 살리려고 엘의 아내 다말을 친정으로 돌려보내고 찾지 않은 유다입니다. 
첫째 둘째 아들을 잃은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자신의 책임을 회피한 유다는 정당화 될 수 없습니다. 
후에 다말의 행동을 옳다고 한 것은 그의 처신이 옳지 않았음을 시인하는 것입니다.

유다와 다말의 이야기에서 유다는 처참하게 무너진 모습을 보여줍니다. 
두 아들과 아내마저 잃은 유다는 딤나에서 창녀에게 들어갑니다. 
그 일이 부끄러운 일인지는 알았기에 가나안 친구 히라를 보내 화대를 지불하려 했습니다. 
창녀를 찾지 못하자 그대로 조용히 덮어두려고 하였습니다. 
괜히 일을 키워 부끄럼을 당할까 걱정되었기 때문입니다(23).

자신의 잘못은 덮으려는 유다가 며느리 다말에게는 혹독한 처벌을 내립니다. 
3달 후 임신했다는 소식을 들은 유다는 다말을 끌어내 불에 태워 죽이라고 합니다. 
자신에게는 관대하지만 타인에게는 엄격한 유다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를 그대로 지켜보지않으셨습니다. 
다말이 전한 물건은 유다를 부끄럽게 하였습니다. 
자신이 석달 전 찾았던 창녀가 바로 며느리 다말이었다는 것, 
자신이 셋째 아들로 다말에게 해야했던 책임을 다하지 않아 다말이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때 유다는 다말이 자신보다 옳다고 시인하였습니다. 
그 후에 다말을 가까이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부끄러움을 알고 물러났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유다, 가나안에 동화된 유다는 성경에서 빛나는 인물이 아닙니다. 
의로운 사람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런 유다를 메시야의 계보를 잇게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왜 이런 유다를 통해 메시야의 계보를 잇게하셨을까요?

♧ 신묘막측하신 하나님, 못난 유다, 불의한 유다를 들어 메시야의 계보를 이으신 하나님, 
우리가 당신을 떠나지 않게 하시고, 당신의 깊은 마음을 헤아리게 하소서, 
그리고 당신의 구원역사의 흐름에 함께하게 하소서, 성령님 강하고 담대하게 하소서, 아멘.]]></description>
			<author><![CDATA[향기나는교회]]></author>
			<pubDate>Tue, 12 May 2026 11:53:55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duftendekirche.kr/?kboard_redirect=1"><![CDATA[QT]]></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창세기 37:18-36 &lt;야곱의 눈물&gt;]]></title>
			<link><![CDATA[https://duftendekirche.kr/?kboard_content_redirect=110]]></link>
			<description><![CDATA[35.그의 모든 자녀가 위로하되 그가 그 위로를 받지 아니하여 이르되 내가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 아들에게로 가리라 하고 그의 아버지가 그를 위하여 울었더라

◇ 창 37:18-36은 아버지의 편애로 마음에 상처를 받고 동생을 시기하고 미워한 형들의 이야기입니다. 
동생을 &lt;꿈꾸는 자&gt;라고 조롱하며 낙인 찍어버린 형들입니다. 인간의 시기와 미움, 분노가 어떤 일을 하는지 잘 보여줍니다.

요셉이 애굽에서 노예가 된 이유를 알려주는 이 이야기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형들은 멀리서 오는 요셉을 보고 바로 알아보았습니다. 
어떻게 형들이 멀리서 오는 요셉을 알아 보았을까요? 그가 흔하지 않은 특별한 옷을 입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옷 때문에 큰 상처를 받은 형들은 그 옷만 보아도 그가 누구인지 알았던 것입니다. 
그 옷은 형들과 요셉을 분리시키는 매개체였을 것입니다. 
요셉은 형제의 무리 속에 들어가지 못하고 언제나 밖에 있는 존재였을 것입니다. 
동생 요셉이 아니라 &lt;꿈쟁이, 잘난 척하는 놈&gt;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형제간이지만 언제나 멀리 떨어져있는 존재였을 것입니다. 
형들은 동생 요셉을 아버지의 편애를 받는 미운 동생으로 낙인찍고 멀리하며 미워하기만했을 것입니다. 

멀리 떨어져서는 그 사람을 알 수 없습니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아야합니다. 
가까이 다가가서 살펴보아야 알수 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서 함께해보지 않고 멀리서 어설프게 본 것으로 소문으로 다른 사람의 판단으로 누군가를 낙인 찍어서는 안됩니다. 
혹시 그런 사람이 있다면 용기내어 가까이 다가가 살펴봅시다. 
그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그 사람의 말에 귀 기울여 봅시다.

인과응보를 맹신하지 않지만 야곱은 뿌린대로 거둡니다. 
아버지를 속인 야곱이 그대로 아들들에게 속임을 당합니다. 
아들들이 합심하여 짜고 아버지를 속입니다. 
아버지가 대놓고 편애하는 동생 요셉을 노예로 팔고 그의 옷을 염소 피에 적셔서 아버지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야곱은 염소 피에 범벅이 되어있는 아들의 옷을 보고 요셉이 짐승에게 잡아 먹힌 것으로 확신하였습니다.
 자신의 옷을 찢고 대성통곡을 하며 자녀들의 위로를 듣지 않고 죽은 아들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다고 극한 슬픔에 빠졌습니다.

야곱은 자신이 어머니와 함께 염소가죽으로 아버지 이삭을 속인 그대로 아들들에게 속임을 당하였습니다. 
죽음으로 아들을 만나고 싶은 극한 슬픔에 빠졌습니다. 
야곱은 자신이 뿌렸던 거짓과 속임수의 벌을 몇 배로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거짓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속임수로 욕망을 취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이 슬픈 사건을 야곱의 가족을 구하고 이스라엘 민족을 형성하게 하는 큰 구원역사로 만드십니다. 
하나님은 야곱과 하신 약속을 지키십니다. 신실하신 하나님!

♧ 신실하신 하나님, 멀리서 낙인찍고 미워하지 않게 하소서, 
가까이 다가가 살피고 듣게 하소서, 야곱과 같이 눈물 흘리는 일을 만들지 않게 하소서,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고 담대하게 하소서, 성령님 강하고 담대하게 하소서, 아멘.]]></description>
			<author><![CDATA[향기나는교회]]></author>
			<pubDate>Tue, 12 May 2026 11:51:52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duftendekirche.kr/?kboard_redirect=1"><![CDATA[QT]]></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창세기 37:1-17 &lt;비극을 이어가는 야곱&gt;]]></title>
			<link><![CDATA[https://duftendekirche.kr/?kboard_content_redirect=109]]></link>
			<description><![CDATA[3.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이스라엘이 여러 아들들보다 그를 더 사랑하므로 그를 위하여 채색옷을 지었더니

◇ 창 37:1-17은 그 유명한 요셉의 꿈이야기입니다. 곡식단이 절하는 꿈, 해와 달, 11 별들이 절하는 꿈, 십 수 년 후에 있을 일에 대한 예언입니다. 
요셉의 꿈에 가려진 야곱 가족의 비극의 씨앗이 뿌려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알듯이 형들이 요셉을 상인들에게 팔아 넘기고 요셉은 애굽에서 노예가 됩니다. 
야곱은 노년에 얻은 아들, 사랑하는 라헬에게서 얻은 아들, 사랑하는 아들을 잃고 슬픔에 빠집니다. 
이런 비극의 씨앗은 다름 아닌 야곱이 뿌린 것입니다. 
야곱이 뿌린 씨앗의 열매를 야곱이 거두며 고통을 당한 것입니다.

성경은 야곱이 요셉을 &lt;더&gt; 사랑했다고 거듭 표현하고 있습니다. 
요셉에게만 채색옷을(겉옷)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채색옷은 특권적인 지위를 상징하는 것으로 야곱의 지나친 편애를 암시합니다. 
맏이도 아닌 늦둥이 동생에게 특별한 권위를 부여한 야곱의 편애는 형들의 마음에 동생에 대한 미움을 싹트게 했고 점점 더 커지게 했습니다. 

아버지의 편애에 더해 요셉은 아버지의 사랑을 등에 업고 형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고자질했습니다. 
늦둥이 요셉이 이렇게 형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일러바치는 고자질 역시 아버지의 &lt;오냐오냐&gt; 편애때문이 아닐까요?

야곱의 편애는 요셉에대한 형제들의 미움을 싹트게 했습니다. 
요셉에게 곱게 평안을 말할 수 없었습니다(4, 19-20절). 

이삭과 리브가의 편애로 인해 형제간의 비극을 경험한 야곱입니다. 
그런 야곱이 편애의 비극을 답습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야곱에게는 편애하는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늦둥이니까, 사랑하는 아내 라헬이 어렵게 나은 아들이니까... 야곱만의 이유, 다른 아들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자녀들은 누구나 부모에게 사랑 받기를 원합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차별을 받으면 상처를 받습니다. 
그것은 미움으로 자라납니다. 
어린 자녀들은 부모가 생각하는 편애의 이유를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 공평하신 하나님, 야곱의 편애가 우리 가정에 있지 않게 하소서, 
하나님이 주신 귀한 지녀들 모두 동등하게 사랑하게 하소서, 
우리 가정이 화목하게 하소서, 성령님 강하고 담대하게 하소서, 아멘.]]></description>
			<author><![CDATA[향기나는교회]]></author>
			<pubDate>Tue, 12 May 2026 11:50:14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duftendekirche.kr/?kboard_redirect=1"><![CDATA[QT]]></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창세기 35:1-15 &lt;벧엘에 제단을 쌓으라&gt;]]></title>
			<link><![CDATA[https://duftendekirche.kr/?kboard_content_redirect=108]]></link>
			<description><![CDATA[1.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 창 35:1-15은 야곱과 하신 약속을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볼 수 있습니다. 
리브가의 태중에 있을 때 하신 약속을 리브가와 야곱의 인위적인 속임수와 계략에도 불구하고 이루어가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드러납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벧엘로 가서 제단을 쌓으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 제단을 쌓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예배,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를 의미합니다. 
아브라함때 부터 이삭, 야곱은 하나님께 제단을 쌓아왔습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들어왔을 때에도(12:7-8), 동서남북 땅과 자손을 주겠다는 약속을 들었을 때에도(13:18) 제단을 쌓았습니다. 
이삭 역시 땅과 자손에 대한 약속을 들었을 때 제단을 쌓았습니다(26:25). 
야곱도 밧단아람에서 돌아와 숙곳을 지나 세겜에 도착했을때 땅을 사고 거기에 제단을 쌓았습니다(33:20).

지금까지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쌓은 제단은 그들 스스로 자발적인 것이었습니다. 
축복 약속에 대한 감사의 제단, 예배의 제단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야곱이 벧엘에서 쌓은 제단은 자발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에 의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제단을 쌓으라는 명령을 하셨을까요?

벧엘은 야곱이 하나님을 만난 곳입니다. 
형을 피해 밧단아람으로 도망치던 때, 처량하고 절망적인 순간, 초라하게 돌을 베게 삼아 잠을 청하던 곳입니다. 
동시에 하나님께서 나타나 땅과 후손, 귀향을 약속해주셨던 곳입니다28:10-15). 
그리고 야곱이 서원하였던 곳이기도 합니다. 
다시 돌아오게 해주시면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모시겠다는 서원을 하였던 곳입니다.

야곱에게 벧엘로가서 제단을 쌓으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야곱에게 감사와 예배와 온전한 관계의 회복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야곱은 가족들에게 명령합니다. 
&lt;다른 나라의 신상들을 버려라, 몸을 깨끗이 하라, 옷을 갈아입어라&gt; 
명령에 따라 그들은 신상들과 귀고리들을 다 내 놓았습니다. 
여기에는 세겜에서의 약탈물들과 라헬이 훔친 드라빔도 있었을 것입니다. 
야곱의 가족들이 불의하게 취했던 것들을 모두 버리는 모습입니다. 
거짓과 속임수로 도둑질로 취했던 것들,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닌 것들을 모두 내려놓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벧엘로 야곱을 다시 이끄셨습니다. 
밧단아람으로 떠날 때, 절망적인 야곱에게 하셨던 약속을 사기시키시며, 야곱이 한 서원을 상기시키십니다. 
세겜화 이방인화 된 야곱과 가족들을 다시 하나님께로 부르십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도록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를 맺도록 이끌어가십니다. 
다시 시작할 기회를 주십니다. 다시 시작하는 야곱과 가족들은 우상과 노략물들, 거짓과 속임수를 버렸습니다. 
처음 하나님을 만났던 모습으로 돌아갔습니다. 

신앙의 회복은 더 잘하려는 결심이 아니라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잘하려고 덕지덕지 붙이고 걸친 것들을 버리고 묻고 처음 하나님을 만났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 신실하신 하나님,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신데 우리는 참 많이 변했습니다. 
처음 하나님을 만났던 그 모습으로 돌아가게 하소서, 떼어내고 버리고 묻게 하소서, 
성령님 강하고 담대하게 하소서, 아멘.]]></description>
			<author><![CDATA[향기나는교회]]></author>
			<pubDate>Tue, 12 May 2026 11:48:57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duftendekirche.kr/?kboard_redirect=1"><![CDATA[QT]]></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창세기 33:1-20 &lt;엘엘로헤이스라엘&gt;]]></title>
			<link><![CDATA[https://duftendekirche.kr/?kboard_content_redirect=107]]></link>
			<description><![CDATA[20.거기에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엘엘로헤이스라엘이라 불렀더라

◇ 창 33:1-20은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야곱의 연약을 보여줍니다. 
그 연약함 중에도 야곱이 보여주는 강점은 하나님의 제단을 쌓는 것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제단을 쌓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에서와 야곱형제는 20년 만에 만났습니다. 에서는 달려와 얼싸안았습니다. 
목을 끌어안고 입맞추었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울었습니다. 
예사 형제들의 모습과 특이 점은 없어보입니다.

에서는 야곱이 보낸 많은 예물들이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야곱이 형에게 주는 예물이라는 소리에 자신에게도 많으니 필요없다고 합니다. 
여기서 에서는 야곱을  동생이라고 부릅니다. 반면에 33장에서 야곱은 에서를 형이라고 부르지 못합니다. 
야곱은 에서를 &lt;주&gt;라고 부르며 자신을 &lt;종&gt;이라고 부릅니다. 
이 호칭에서 야곱의 마음이 드러납니다. 
야곱의 마음에는 에서에 대한 두려움이 가득합니다. 
어떻게 해서든 에서의 마음을 누그려뜨리고 그의 마음을 사려고 노력하고 안간힘을 쓰는 모습입니다. 
에서는 야곱을 용서하고 동생으로 관계를 회복하려고 하지만 
야곱은 관계의 회복보다는 불편하고 두려운 상황이 속히 종료되기를 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에서가 함께 세일로 가자고 할 때도 야곱은 자녀들과 가축들의 어림을 핑계로 자신들은 천천히 가겠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숙곳에 머물고, 후에는 세겜으로 갑니다. 에서에게로 가지 않습니다.

야곱의 이러한 태도는 '얍복강의 씨름' 이후 변화된 모습과 여전히 남아있는 인간적인 잔머리가 뒤섞인 모습입니다. 
하나님께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받았지만, 현실의 위협 앞에서는 여전히 "야곱(속이는 자, 발꿈치를 잡는 자)"다운 조심성을 버리지 못한 것입니다.

야곱의 모습에서 인간의 연약함을 봅니다. 인간의 한계를 봅니다. 
하나님을 찾을 수 밖에 없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민낯을 봅니다.

야곱은 에서를 따라가지 않고 숙곳에 머물다가 세겜으로 이동합니다. 
그리고 그곳에 땅을 삽니다. 야곱이 가나안에서 자신의 땅, 법적으로 유효한 땅을 가지게 됩니다. 
숙곳은 요단 동편의 땅, 세겜은 요단 서편의 땅으로 가나안의 중심에 있는 땅입니다. 
가나안의 중심에 드디어 깃발을 꽂았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시작입니다.  
야곱은 그곳을 &lt;엘엘로헤이이스라엘&gt; &lt;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gt;이라고 명명합니다. 
그리고 그곳에 하나님의 제단을 쌓고 하나님을 경배합니다. 

연약한 야곱을 이끌어가시는 하나님, 그런 중에 인간의 나약함을 벗어나지 못하지만 하나님을 찾고 경배하는 야곱...

♧ 신실하신 하나님, 야곱의 연약함을 통해 우리의 모습을 봅니다. 엘엘로헤이이스라엘의 고백이 우리의 입에서 나오게 하소서,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게하소서, 성령님 강하고 담대하게 하소서, 아멘.]]></description>
			<author><![CDATA[향기나는교회]]></author>
			<pubDate>Tue, 12 May 2026 11:47:10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duftendekirche.kr/?kboard_redirect=1"><![CDATA[QT]]></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창세기 32:1-21 &lt;야곱의 귀향길:마하나임&gt;]]></title>
			<link><![CDATA[https://duftendekirche.kr/?kboard_content_redirect=106]]></link>
			<description><![CDATA[6. 사자들이 야곱에게 돌아와 이르되 우리가 주인의 형 에서에게 이른즉 그가 사백 명을 거느리고 주인을 만나려고 오더이다
7. 야곱이 심히 두렵고 답답하여 자기와 함께 한 동행자와 양과 소와 낙타를 두 떼로 나누고

◇ 창 32:1-21은 라반을 뒤로하고 형 에서를 만나기 직전의 야곱의 모습입니다. 야곱의 마음상태와 그의 문제 해결책들입니다.

20년이 지났지만 에서를 피하여 도망쳤던 그때가 생생한 야곱은 에서가 두렵고 무섭습니다. 
야곱은 에서의 마음을 풀기위해 사자들을 보냈습니다. 
자신이 늦게 귀향하게 된 이유(4)와 자신이 많은 종과 가축이 있기에 이삭의 재물에 대한 상속은 필요없다는 것을 알리며(5) 
오직 에서의 은혜만이 필요하다고 전갈을 보냈습니다.

야곱은 사자들에게 에서가 400명을 거느리고 야곱을 향해오고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는 맥이 풀렸을 것입니다. 다리의 힘이 풀려서 주저 앉았을 지도 모릅니다(7). 
사냥을 좋아해 활과 칼을 쓰는 일에 능숙한 에서가  자신의 사람들을 어떻게 훈련을 시켰을지 추측이 됩니다. 

야곱은 자신의 소유를 두 떼로 나누었습니다(7). 에서의 공격에 한 떼라도 구하기 위한 방책입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세운 것입니다.

그후  야곱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9-12). 
조상의 하나님, 벧엘에서 만나고 약속을 주신 하나님,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명령하신 하나님, 
이렇게 큰 가족과 가축의 무리를 이루도록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 
라반에게 한 마디 말로 자신의 무리를 보호해주신 하나님께(31:24) 간구하였습니다.

그리고 야곱은 두번째 계책을 세웁니다. 무려 550마리의 각종 가축들을 떼를 나누어 에서를 향해 보냅니다. 
에서의 분노를 누그러뜨리기 위한 조치를 취했습니다. 
에서의 마음을 누그려뜨리기 위해 예물을 앞서 보내고 야곱은 뒤에 남았습니다(21). 
여전히 야곱의 마음에는 두려움과 답답함으로 가득했을 것입니다(7).

야곱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들을 하였습니다. 
에서가 무력으로 어떤 사람인지 알기에 무섭고 떨림으로 최선을 다했을 것입니다. 
사실 예물이라고 하지만 자신의 잘못을 덮기 위한 뇌물입니다. 

야곱의 기도에서 볼 수 있듯이 야곱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호하시고 은혜를 베푸셔서 현재의 무리를 이룰 수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곱은 두려움과 답답함을 떨쳐내지 못했습니다. 기도하면서도 두렵고 떨렸습니다. 

32:1-2에서 하나님은 야곱과 동행하며 그를 보호해주실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하나님의 군대를 보여주셨습니다. 
야곱과 함께하시며 호위하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보여주셨습니다. 
야곱도 그곳을 &lt;마하나임&gt;이라고 명명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야곱과 하신 약속을 잊지 않으셨고 그 약속을 언제나 지키셨습니다.

야곱에게는 신실하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인간의 두려움이 공전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비난 받을 모습과 칭찬받을 모습을 함께 가지고 있는 불완전한 모습입니다. 

♧ 신실하신 하나님, 당신을 믿고 따라 가면서도 두려움과 답답함이 있는 부족한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성령님 강하고 담대하게 하소서, 아멘.]]></description>
			<author><![CDATA[향기나는교회]]></author>
			<pubDate>Tue, 12 May 2026 11:43:54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duftendekirche.kr/?kboard_redirect=1"><![CDATA[QT]]></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창세기 31:36-42 &lt;당당한 야곱&gt;]]></title>
			<link><![CDATA[https://duftendekirche.kr/?kboard_content_redirect=105]]></link>
			<description><![CDATA[36.야곱이 노하여 라반을 책망할새 야곱이 라반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 허물이 무엇이니이까 무슨 죄가 있기에 외삼촌께서 내 뒤를 급히 추격하나이까

◇ 창 31:36-42은 야곱이 삼촌 라반의 부당함을 책망하며, 삼촌의 부당한 횡포로 자신의 20년의 삶이 얼마 억울하고 고단하였는지, 
하지만 그런 중에도 자신이 얼마나 성실하고 정직하였는지  말하는 장면입니다. 

라반은 형제들을 이끌고 도망친 야곱을 추격하여 야곱의 모든 것을 빼앗으려했습니다. 
딸들도 내 딸, 자식들도 내 자식, 양떼도 다 내것 이라고 말하는 라반이 어떤 생각으로 20년 동안 야곱을 대하였을지 상상이 갑니다.

​라반이 야곱의 짐을 손으로 샅샅이 뒤졌음에도 드라빔을 찾지 못하자 야곱은 라반을 책망하고, 울분을 토하며 부당한 20년의 삶을  쏟아 놓습니다.

​라반의 속임수로 야곱은 라헬을 아내로 얻기 위해 14년을 일했습니다. 
또 6년간 품꾼으로 라반의 양떼를 관리하며 일했습니다. 
그러는 20년 동안 라반의 부당한 횡포가 반복되었음을 조목조목 제시하며 변론합니다. 

야곱은 정직하고 성실하게 일했습니다. 
암양과 암염소가 낙태를 한 적이 없습니다. 
숫양도 먹지 않았습니다. 
야곱은 자신의 과실이나 방임으로 인한 손해를 라반에게 끼치지 않았습니다. 
또한 야곱은 맹수에게 찢기거나 도둑맞은 것에대해 배상을 했습니다. 
당시 관례상 목자의 부주의로 일어난 손해에만 배상을 하였지만 라반은 모든 손해에 대하여 무족건 배상을 요구하였던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들판에서 양과 염소를 돌보며 혹독한 자연환경과 맞서야했습니다. 
밤의 혹독한 추위와 낮의 더위는 육체적 한계를 느끼게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라반은 10번이나 품삯을 조정하였습니다. 
20년동안 라반은 부당한 횡포를 일삼았습니다.

야곱은 라반의 부당한 횡포를 아내를 위해서 그리고 자녀들을 위해서 20년 동안 견디어냈습니다.
 거짓과 속임수가 아니라 정직과 성실함으로 견디어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당당합니다. 
만약에 라반의 양을 치며 게으름과 나태함, 부정함이 있었다면 야곱은 이렇게 당당하게 라반을 책망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야곱은 이런 부당함을 견디어 낼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셨기 때문이라고 고백합니다. 
이런 부당함 가운데  큰 가족을 이루고 많은 가축을  소유하게 된 것은 모두 하나님께서 함께하셨기 때문입니다.

​♧ 동행하시는 하나님, 부당한 횡포 중에도 정직하고 성실하게 일한 야곱을 기억하게 하소서, 
아내와 자녀를 위해서 책임을 다하는 야곱을 기억하게 하소서, 
부당함을 갚으시는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믿고 성실하게 책임을 다하게 하소서, 
성령님 강하고 담대하게 하소서, 아멘.]]></description>
			<author><![CDATA[향기나는교회]]></author>
			<pubDate>Tue, 12 May 2026 11:39:57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duftendekirche.kr/?kboard_redirect=1"><![CDATA[QT]]></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창세기 31:17-35 &lt;또 도망치는 야곱&gt;]]></title>
			<link><![CDATA[https://duftendekirche.kr/?kboard_content_redirect=104]]></link>
			<description><![CDATA[20.야곱은 그 거취를 아람 사람 라반에게 말하지 아니하고 가만히 떠났더라
21.그가 그의 모든 소유를 이끌고 강을 건너 길르앗 산을 향하여 도망한 지

◇ 창 31:17-35은 20년간 처가살이 하던 야곱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는 이야기입니다. 

야곱은 20년 전 장자의 축복기도를 받기위해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와 형을 속였습니다. 
형은 분노로 동생을 죽이겠다고 결심하였고 그래서 형을 피해 도망치듯 외삼촌의 집으로 피신하였습니다. 
20년이 흘렀습니다.

야곱은 외삼촌과 그의 형제들이 양털을 깍는 일 년 중 가장 큰 행사에 집중해 있을때, 몰래 식솔들과 가축들을 이끌고 고향으로 향했습니다.
고향에서 혈혈단신 무일푼으로 고향을 도망쳐 나왔던 야곱이 이제 식솔들과 가축을 이끌고 외삼촌의 집을 도망쳐 나왔습니다. 

야곱의 인생이 참으로 처량합니다.
 장자의 축복을 받겠다고 어머니와  아버지를 속이고 도망치더니, 
이제는 외삼촌에게 속으며 20년 처자식과 가축을 얻기위해 노동력착취를 당하더니 또 도망을 칩니다.

 3일 후 소식을 들은 라반은 형제들과 추격하여 7일만에 길르앗산에서 야곱을 따라잡았습니다. 
라반은 야곱이 자신에게 알리지 않고 도망쳤다는 것과 자신의 신을 훔쳐갔다는 것에 분개했습니다. 
그러면서 라반은 야곱에게 자신의 힘을 과시합니다. 
"너를 해할 만한 능력이 내 손에 있으나..."  
마음만 먹으면 너 같은 것은 없앨수 있다는 것입니다.

라반은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를 말합니다. 
" ... 너희 아버지의 하나님이 어제 밤에 내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삼가 야곱에게 선악간에 밀하지 말라 하셨느니라"(29)
라반이 야곱을 힘으로 해하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의 경고 때문입니다. 
라반이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지는 않지만 하나님의 명령을 따를 수 밖에 없는 분임을 시인하고 있습니다.

야곱이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문제들을 헤쳐 나가려 할 때 하나님은 함께하셨습니다. 
벧엘에서 돌베게를 베고 잘 때도 함께하시면 용기와 희망을 주셨습니다. 
길르앗산에서도 하나님은 야곱과 함께하셨습니다. 
라반을 막아주시고 벧엘에서 하신 약속, 고향으로 돌아오게 하시겠다는 약속을 이루어주셨습니다. 

자신의 잘못으로 도망치는 야곱의 곁에는 항상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야곱이 잘못에 대한 대가를 톡톡히 치룰 때 하나님은 보이시지 않았지만 그가 위험에 빠졌을 때 하나님은 자신을 나타내셨습니다. 

♧ 정의롭고 신실하신 하나님,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자녀들과 함께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실수와 잘못을 눈 감아주고 등 두드려주시는 분이 아니라 그에 걸맞는 고난과 시련으로 연단시키시는 의로우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정의롭고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게 하소서, 
성령님 강하고 담대하게 하소서, 아멘.]]></description>
			<author><![CDATA[향기나는교회]]></author>
			<pubDate>Mon, 27 Apr 2026 15:11:44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duftendekirche.kr/?kboard_redirect=1"><![CDATA[QT]]></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창세기 29:21-35 &lt;라헬을 사랑한 야곱 : 비극의 서막&gt;]]></title>
			<link><![CDATA[https://duftendekirche.kr/?kboard_content_redirect=103]]></link>
			<description><![CDATA[창세기 29:21-35 &lt;라헬을 사랑한 야곱 : 비극의 서막&gt;

30.야곱이 또한 라헬에게로 들어갔고 그가 레아보다 라헬을 더 사랑하여 다시 칠 년 동안 라반을 섬겼더라

◇ 29: 21-35은 야곱의 결혼이야기입니다. 7년×7년, 14년의 착취와 같은 노동을 해야했던 연유를 보여줍니다.

7년 더부살이의 꽃이 되어야할 야곱의 결혼은 야곱이 속임을 당하는 가장 큰 고통의 순간이 되었습니다. 
아버지를 속이는 자에서 삼촌에게 속는 자가 되었습니다.
어머니의 계략에 동조하여 아버지를 속였던 야곱이  아버지의 계략에 동조한 레아에게 속아 넘어간 것입니다. 
심은 대로 거둠이 증명되는 장면입니다.

라헬을 아내로 얻기 위한 7년의 노동은 당시 관습에 따르면 2배에 달하는 신부의 몸값입니다. 
야곱이 이렇게 2배에 달하는 몸값을 치른 것은 라헬을 그만큼 사랑했다는 것이고, 더불어 자신의 떠돌이 처지를 잘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오갈데 없는 떠돌이 이기에 2배에 달하는 몸값을 지불했던 것입니다. 
이를 알고 있는 라반은 탐욕스럽게 그것을 이용해 야곱을 속이고 착취를 한 것입니다. 
속임을 당하는 자의 아픔 처절하게 느꼈을것입니다.

삼촌에게 속은 야곱은 라헬을 위해서 또 7년을 일했습니다. 
사랑하는 라헬을 아내로 얻기위해 부당하고 억울한 노동을 해야만 했습니다.
이 7년 동안 야곱의 라헬에 대한 사랑은 더 커졌고 반면에 레아에 대해서는 미움이 더 커졌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야곱의 마음을 아셨기에 레아를 긍휼히 여기셨습니다(31). 
하나님은 레아에게 아들 넷을 허락하셨습니다. 
아들 넷을 낳음에도 야곱의 마음은 레아에게서 점점 더 멀어지고 라헬에게로 향했습니다. 

레아와 라헬에 대한 편애는 가정의 비극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에서와 리브가의 아들들에 대한 편애가 형제 간의 사이를 원수로 만들고 가정을 파탄냈듯이 
야곱의 편애는 이 가정의 왜곡된 관계를 만들고 큰 비극의 씨앗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편애하지 않으십니다. 
첫째도 둘째도 막내도 서열에 따라 차등을 두지 않으십니다. 
왕도 신하도 백성도 종도 신분에 따라 차등을 두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능력에도 차등을 두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독생자 아들을 세상 모두를 위해 내어주셨습니다. 
독생자 아들은 세상 모두를 위해 아버지의 뜻에 순복하여 자신을 내놓으셨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님의 사랑은 세상 모두에게 동일하게 부어주셨습니다. 

♧ 공평하신 사랑의 주님, 우리 마음에 편애하는 마음, 차별하는 마음이 사라지게 하소서, 
하나님의 마음을 본받아 모두를 긍휼히 여기며 사랑하게 하소서, 성령님 강하고 담대하게 하소서, 아멘.]]></description>
			<author><![CDATA[향기나는교회]]></author>
			<pubDate>Fri, 24 Apr 2026 15:40:33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duftendekirche.kr/?kboard_redirect=1"><![CDATA[QT]]></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창세기 29:1-20 &lt;새로운 시작: 고난 끝 행복시작?&gt;]]></title>
			<link><![CDATA[https://duftendekirche.kr/?kboard_content_redirect=102]]></link>
			<description><![CDATA[창세기 29:1-20 &lt;새로운 시작: 고난 끝 행복시작?&gt;

20.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 년 동안 라반을 섬겼으나 그를 사랑하는 까닭에 칠 년을 며칠 같이 여겼더라

◇ 창 29:1-20은 야곱이 하란에서 라헬과 외삼촌 라반을 만나 그의 집에 거하게 되는 이야기의 시작을 보여줍니다.

야곱은 약 850km, 도보로 한 달의 광야 길을 지나 우물가에 도착했습니다. 
외사촌 라헬을 만나 우물의 큰 돌 뚜껑를 옮기고 그녀의 양들에게 물을 마시게했습니다. 
라헬은 야곱의 정체를 알고 아버지 라반에게 달려가 소식을 전했습니다. 
라반은 단숨에 달려와 안고 입맞추며 환대하였습니다.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한 달을 거주한 후 라반은 야곱에게 친절하게(?) 품삯에 대한 제안을 했습니다. 
우물의 돌을 혼자 옮기고 양들에게 물을 마시게 한 것을 듣고, 
한 달간의 야곱을 살펴 본 라반의 머리에는 조카 야곱을 이용해 큰 이익을 볼 계획이 섰습니다.
라반은 야곱에게 품삯을 정하라고 합니다. 
야곱은 재물보다 사랑하는 라헬을 위해 신부의 몸값으로 7년을 일하겠다고 합니다. 
야곱은 사랑의 힘으로 7년을 수 일 같이 여겼다고 합니다. 

야곱은 라반의 집에서 사랑하는 라헬을 얻기 위한 새로운 시작을 했습니다. 
형의 분노를 피했습니다. 850km의 광야길을 건너왔습니다. 
어머니의 오빠인 외삼촌의 집에 함께 거하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한 눈에 반한 라헬을 아내로 맞을 기대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야곱의 새로운 시작은 장미빛이었습니다. 
고난 끝 행복 시작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새옹지마

♧ 신실하신 주님,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나를 긍휼히 여겨주소서, 당장 눈 앞의 일에 일희일비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소서, 
주님의 인도를 구하고 그 인도에 순복하게 하소서, 성령님 강하고 담대하게 하소서, 아멘.]]></description>
			<author><![CDATA[향기나는교회]]></author>
			<pubDate>Fri, 24 Apr 2026 15:39:01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duftendekirche.kr/?kboard_redirect=1"><![CDATA[QT]]></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창세기 28:1-22 &lt;돌베게 베고 자는 야곱&gt;]]></title>
			<link><![CDATA[https://duftendekirche.kr/?kboard_content_redirect=101]]></link>
			<description><![CDATA[창세기 28:1-22 &lt;돌베게 베고 자는 야곱&gt;

10.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11.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 곳의 한 돌을 가져다가 베개로 삼고 거기 누워 자더니

◇ 창 28:1-22은 야곱이 에서를 피해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향하는 중 루스(벧엘)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확증받는 모습을 전해줍니다.

야곱의 형 에서를 피해 삼촌의 집을 향해 떠났습니다. 
겉모양은 삼촌의 딸 중에 아내를 아내를 맞으려는 것이지만 속내는 자신을 죽이려는 형을 피해 도망치는 것입니다.
그 여정의 초라하고 고단함이 돌을 베게 삼아 잠을 청하는 모습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브엘세바에서 루스(벧엘)까지는 대략 95km 정도 도보로 3-5일의 거리입니다.
 홀로 집을 떠나 육체적 피로가 누적되기에 충분한 거리입니다. 
거짓말로 장자의 축복을 받은 야곱은 자신이 이렇게 초라하게 도망치는 신세가 될 줄 몰랐을 것입니다.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3-5일 동안 홀로 광야를 걸으며 얼마 생각하고 또 생각을 했을까요? 
몸도 지치고 마음도 지치고... 돌을 베게삼아 잠을 청하는 야곱은 스스로가 얼마나 처량하고 초라했을까요?

그 처량하고 초라한 잠자리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했던 땅과 자손에 대한 약속을 하십니다. 
땅의 모든 족속이 야곱과 그의 자손으로 복을 받을 것, 곧 복의 통로가 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에 더해 동행하셔서 다시 돌아올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야곱은 일어나 자신이 베고 잔 돌로 기둥을 심고 기름을 붓고 하나님께 예배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선택한 야곱, 어머니와 자신의 잘 못으로 도망치는 처량한 신세가 된 야곱, 하나님은 그가 가장 처량하고 초라게 지쳐 있을 때 찾아가셨습니다. 
그에게 새로운 힘과 용기를 주셨습니다. 
새로운 희망과 소망을 주셨습니다.
앞으로 펼쳐질 더 큰 고난의 여정, 자기가 속였던 그 이상의 속임을 당하며 억울함을 경함하게 될 20년을 이겨낼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약속의 자녀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고통스러운 연단을 통해서라도 세우셔서 계획을 이루시는 신실하신 분입니다.

♧ 신실하신 하나님, 야곱과 동행하신 하나님, 오늘 지금 저와 함께 하심을 믿습니다. 성령님 강하고 담대하게 하소서, 아멘.]]></description>
			<author><![CDATA[향기나는교회]]></author>
			<pubDate>Fri, 24 Apr 2026 15:37:54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duftendekirche.kr/?kboard_redirect=1"><![CDATA[QT]]></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창세기 27장 &lt;심은대로 거두리&gt;]]></title>
			<link><![CDATA[https://duftendekirche.kr/?kboard_content_redirect=100]]></link>
			<description><![CDATA[창세기 27장 &lt;심은대로 거두리&gt;

41.그의 아버지가 야곱에게 축복한 그 축복으로 말미암아 에서가 야곱을 미워하여 심중에 이르기를 아버지를 곡할 때가 가까웠은즉 내가 내 아우 야곱을 죽이리라 하였더니

◇ 창 27장은 성경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중에 한 곳일 것입니다. 어머니가 쌍둥이 형제를 철천지 원수로 만드는 장면입니다.

이삭이 나이들어 맏아들 에서가 사냥하여 요리한 별미를 먹고 장자의 축복을 주려고 합니다. 
이 소리를 엿들은 리브가는 엄청난 계략을 꾸밉니다. 
자기가 편애하는 작은 아들 야곱에게 장자의 축복을 받게 하려는 것입니다. 
에서와 전혀 다른 야곱을 에서로 변신시켜 이삭의 축복, 곧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하려는 것입니다. 
야곱은 축복은 고사하고 저주를 받을까 두려워 주저하였지만 어머니 리브가는 멈추지 않습니다. 
저주는 자기가 받을테니 이르는대로 따르기만하라고 합니다(12-13).

이삭도 그리 호락호락하지는 않았습니다. 
요리를 가져와 자기가 맏아들 에서라고 속이는 야곱의 목소리가 미심쩍어 만져 확인도 하였습니다. 
음식을 먹고 축복하기전 이삭은 마지막으로 확인하였습니다. 자기에게 입맞추라고 하며 야곱의 냄새를 맡았습니다. 
에서의 옷을 입은 야곱에게서는 에서의 체취가 났고 이삭은 의심을 풀고 마음껏 축복하였습니다.

어머니 리브가의 철저한 계획은 눈 어두운 이삭을 속여 차남인 야곱이 장자의 축복을 받게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사냥을 하고 돌아와 별미를 해서 아버지께 축복을 받으려던 에서는 청천벽력같은 소리를 듣습니다. 
그래도 축복을 해달라고 애걸복걸합니다. 
마지못해 이삭은 저주와 같은 축복을 합니다.
 이에 에서의 마음에는 겉잡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올랐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야곱을 죽이겠다는 계획을 세웁니다.

이 소리를 옅들은 리브가는 야곱을 불러 에서의 분노를 전합니다. 
그리고 야곱을 살릴 계략을 꾸밉니다. 
리브가의 계략은 야곱을 자신의 오빠 라반의 집으로  피신시키는 것입니다. 
에서의 분노가 사라진 후에 다시 부르는 것입니다. 
리브가의 이 계략도 성공합니다. 
야곱은 라반의 집으로 떠나고 20년 후에나 귀향하게 됩니다. 
리브가의 계획대로 에서로부터 생명을 보존합니다. 
그러나 20년의 파란만장한 그의 삶, 그리고 사랑하는 어머니와의 이별... 그렇게 애타게 갈구하던 장자의 축복을 받은 삶인지 의구심이 듭니다.

하나님은 리브가의 태중에 있을때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길 것이라고 하셨습니다(25:23).  
하나님의 선택과 계획은 작은 자 야곱이었습니다. 
야곱은 장자권에 대한 갈구함이 있었습니다. 
이에 반해 에서는 장자권을 가볍게 생각하는 경솔함이 있었습니다(25:31-32). 
어머니 리브가의 욕심과 거짓으로 가득한 계략이 없었다하더라도 하나님의 선택과 계획은 유효하지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어머니 리브가의 편애와 거짓에서 비롯된 이 형제간의 갈등은 이삭의 가족에게 마음을 찢는 큰 아픔을 남겼습니다. 
형 에서에게는 동생을 죽이고 싶은 미움과 분노를,  야곱에게는 20년의 타향살이와 설움을, 
어머니 리브가는 그토록 사랑하는 아들을 다시는 볼 수 없는 그리움을 남겼습니다. 
이후 에서와 어머니 리브가의 관계는 어떠했을까요? 그 사이에도 큰 아픔이 있었을 것입니다.

에서와 야곱의 장자권 싸움에서 이들이 서로 차지하려던 장자권은 무엇이었을까요?
 아버지 이삭의 재산과 권한을 물려 받는 것이었을까요? 
아니면 후에 메시야를 잉태하는 통로가 되는 영적인 장자권이었을까요? 
후에 이삭의 모든 유산을 에서가 차지했다는 것을 볼때 이 장자권은 재물에 대한 장자권이 아님이 분명합니다.

장자권을 차지하려는 리브가의 욕망과 거짓으로 가득한 계략은 가족 모두에게 큰 상처와 아픔을 주었습니다. 
심은대로 거두리라는 말씀이 생각납니다(갈6:7-8).

리브가가 태중의 아들을 두고 하신 말씀을 믿고 거짓으로 가득한 계략을 사용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해봅니다. 가정의 불화없이 하나님의 계획이 성취되지 않았을까요? 

&lt;심은 대로 거둔다&gt; 
&lt;하나님은 거짓을 싫어하신다&gt;(잠6:16-19)

♧ 신실하신 하나님, 메시아로 이어지는 아브라함의 장자권, 그 영적 장자권을 갈망하게 하소서, 
세상의 욕심과 거짓으로 욕심을 채우려 하지 않게 하소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고 순종하게 하소서, 성령님 강하고 담대하게 하소서, 아멘.]]></description>
			<author><![CDATA[향기나는교회]]></author>
			<pubDate>Fri, 24 Apr 2026 15:36:36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duftendekirche.kr/?kboard_redirect=1"><![CDATA[QT]]></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창세기 26:12-33 &lt;우물파는 사람, 이삭&gt;]]></title>
			<link><![CDATA[https://duftendekirche.kr/?kboard_content_redirect=99]]></link>
			<description><![CDATA[창세기 26:12-33 &lt;우물파는 사람, 이삭&gt;

28.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의 사이 곧 우리와 너 사이에 맹세하여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 말하였노라

◇ 창 26:12-33은 이삭이 자신을 쫓아낸 아비멜렉에게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정받고 계약을 맺는 이야기입니디.

이삭은 그랄 땅에서 농사로 큰 수확을 얻어 거부가 되었고 주민들의 시기와 질투를 받았습니다. 
주민들은 아브라함이 판 우물을 메워 적대감을 표출하였고, 이삭의 소유를 빼앗고 삶의 기반을 무너뜨렸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랄 평지에서 쫓아냈습니다. 

이삭은 그랄 골짜기로 옮겨 아버지가 팠던 우물을 다시 팠지만 그들은 또 메워버렸습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고 이삭은 그 다툼을 피하여 또 우물을 팠습니다. 
본문에서 이삭은 그랄사람들과의 다툼을 피해 이동하며 우물을 네번이나 팠습니다. 

그런 중 브엘세바에 이르렀을때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lt;내가 너와 함께하겠다&gt; 며 아브라함에게 한 약속을 그대로 이삭에게도 하셨습니다. 
 
그곳에서 이삭은 또 우물을 팠습니다. 
그리고 그곳으로 이삭을 쫓아낸 아비멜렉이 친구와 군대쟁관과 동행하여 계약을 맺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을 분명히 보았다고 고백하며  평화조약을 맺었습니다.

이삭은 다툼을 싫어하여 다툼이 없는 곳으로 이주하여 우물을 팠습니다. 
이삭이 그들괴 디툴 명분이나 힘이 없어서 이주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세력도 상당하였고(14:14), 그것에 더해 그랄에서 얻은 부 또한 상당했기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이삭은 시기와 질투에 대항하지 않고 떠나 또 우물을 팠습니다.

그의 힘으로도 부당한 주장들과 행위들에 저항하고 이겨낼 수 있었지만 그는 다툼으로 그것을 유지하려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선택은 자신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과 인도를 따라 살아가려는 순종과 믿음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얼마나 억울하고 화가 났을까요? 부당한 주장들과 행동들...
이삭은 &lt;함께하겠다&gt;는 하나님의 약속을 듣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제단을 쌓고 예배로 화답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이 했던 일을 그대로 따르고 있습니다(12:8; 13;18). 
하나님을 섬기며 살겠다는 순종의 결단이며 땅 약속의 성취에 대한 믿음의 표현입니다.

우리 인생에는 억울하고 화나는 일이 참 많습니다. 
가슴이 터질듯이 아프고 숨이 멎을 듯이 답답할 지경에 처할 때도 있습니다. 
어떻게 이겨내시나요? 
하나님은 우리의 억울함과 분함을 아십니다. 
함께하시며 다독이고 계십니다. 
위로하고 계십니다. 
힘을 내십시요!!

♧ 함께하시는 주님, 우리의 모든 억울함과 분함을 당신이 해결해주실 것을 믿고 당신을 따르게 하소서, 
이삭처럼 마지막에 승리자가 되게하소서, 
성령님 강하고 담대하게 하소서, 아멘.]]></description>
			<author><![CDATA[향기나는교회]]></author>
			<pubDate>Fri, 24 Apr 2026 15:34:36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duftendekirche.kr/?kboard_redirect=1"><![CDATA[QT]]></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창세기 25:1-18 &lt;신실하신 하나님&gt;]]></title>
			<link><![CDATA[https://duftendekirche.kr/?kboard_content_redirect=98]]></link>
			<description><![CDATA[창세기 25:1-18 &lt;신실하신 하나님&gt;

12.○사라의 여종 애굽인 하갈이 아브라함에게 낳은 아들 이스마엘의 족보는 이러하고
16.이들은 이스마엘의 아들들이요 그 촌과 부락대로 된 이름이며 그 족속대로는 열두 지도자들이었더라
18.그 자손들은 하윌라에서부터 앗수르로 통하는 애굽 앞 술까지 이르러 그 모든 형제의 맞은편에 거주하였더라

◇ 창 25:1-18 은 아브라함의 아들들의 족보입니다. 
이삭이 아닌 다른 아들들의 족보를 통해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드러내고 계십니다.

아브라함은 후처 그두라를 통해 여섯 아들들을 두었고, 그 아들들을 통해 여러 족속들을 이루었음을 보여줍니다. 

또한 하갈을 통해 얻은 이스마엘의 후손들도 여러 족속을 이루어 아라비아 북부(하윌라)에서 이집트 동쪽 국경지대(술; 16:7)에 이르기까지 넓은 지역에 흩어져 살았습니다.

도망친 하갈과 이스마엘이 광야에서 죽음을 목전에 두었을때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실 것입니다(창16:10이하). 
하나님은 그 광야에서 하갈과 이스마엘에게 하신  약속을 이루어주셨습니다. 
큰 민족을 이루고 넓은 지역에서 삶을 영위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라를 통해 아브라함의 적통을 이어가게 하시고, 또한  하갈과 그두라를 통해서 많은 자손을 두게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이삭이 축복을 받고 아브라함의 가문을 이어갔지만, 
다른 적자들도 하나님의 축복에서 완전히 배제되지 않고 아브라함에게 주신 축복의 그늘 아래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이루집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기때문입니다. 

♧ 신실하신 하나님, 선한 길, 진리의 길로 인도하실 당신을 의지하며 오늘을 살아내게 하소서, 
성령님 강하고 담대하게 하소서, 아멘.]]></description>
			<author><![CDATA[향기나는교회]]></author>
			<pubDate>Fri, 24 Apr 2026 15:33:27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duftendekirche.kr/?kboard_redirect=1"><![CDATA[QT]]></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창세기 23장 &lt;62년&gt;]]></title>
			<link><![CDATA[https://duftendekirche.kr/?kboard_content_redirect=97]]></link>
			<description><![CDATA[창세기 23장 &lt;62년&gt;

1.사라가 백이십칠 세를 살았으니 이것이 곧 사라가 누린 햇수라
16.아브라함이 에브론의 말을 따라 에브론이 헷 족속이 듣는 데서 말한 대로 상인이 통용하는 은 사백 세겔을 달아 에브론에게 주었더니
20.이와 같이 그 밭과 거기에 속한 굴이 헷 족속으로부터 아브라함이 매장할 소유지로 확정되었더라

◇ 창 23:1-20은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매장지를 구매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아브라함은 성문에서  헷족속 장로들 앞에서 에브론에게 은 400세겔을 주고 막벨라굴이 있는 밭과 그 주변의 나무들을 구매했습니다
(당시 노동자의 1년 품삯이 10세겔정도 40년치연봉에 해당함).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나 가나안 땅에 들어온지 62년이 흘렀습니다.
 62년 동안 가나안 땅에서 유목을 하며 나그네로 살았습니다. 
그 땅에 이미 정착한 햇족속, 아모리족속 등의 지역에 머물며 거류민으로 살았습니다.

헷족속은 땅을 구매하려는 아브라함을 &lt;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gt;라고 부릅니다. 
그들도 아브라함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롯을 구하기위해 다섯 도시 연맹과 싸워 승리한 일(창14장), 아비멜렉과의 사건(창20) 등을 통해 정치 군사 종교적 지도력을 갖춘 실질적인 권위를 갖춘 지도자로 인식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 지역에서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지도적 위치에 있음을 인정받는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나그네입니다. 거류민입니다. 아내를 장사지낼 굴 하나 없는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으로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겠다는 약속을 믿고 가나안으로 왔습니다. 
친척과 아비집, 그가 이룬 모든 것을 내려놓고 가나안으로 왔습니다. 
그런데 62년 동안 아내를 묻을 굴 하나 없는 나그네, 거류민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62년 만에 드디어 밭을 샀습니다. 자기땅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아내를 묻고 자기도 묻히고, 자손들도 묻힐 땅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62년만에, 그것도 겨우 아내를 묻을 정도의 땅을...

62년도안 그의 하나님을 향한 믿음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어디서 이런 믿음이 나오는 것일까요? 
당장 원하는 것이 이루지지 않으면 하나님께 항의하며 원망하는 너무나 가벼운 우리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아브라함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과 달리 생각하시며, 우리의 시간과도 달리 움직이시는 분입니다.  

62년의 시간, 제가 살아온 시간보다 더 긴 시간입니다. 과연 나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이렇게 긴 시간을 견뎌낼 수 있을까? 
인내하며 기다릴 수 있을까? 아브라함의 믿음의 삶을 다시 바라보게 됩니다.

♧ 우리와 다른 생각과 시간으로 활동하시는 주님, 당장 눈 앞의 것만 생각하며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임을 고백합니다. 
주님, 긍휼히 여기시고 함께하여 주소서, 끌고, 밀고 옆에서 함께하여 주소서, 성령님 강하고 담대하게 하소서, 아멘.]]></description>
			<author><![CDATA[향기나는교회]]></author>
			<pubDate>Fri, 24 Apr 2026 15:32:31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duftendekirche.kr/?kboard_redirect=1"><![CDATA[QT]]></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창세기 26:1-11 &lt;순종과 연약함&gt;]]></title>
			<link><![CDATA[https://duftendekirche.kr/?kboard_content_redirect=96]]></link>
			<description><![CDATA[창세기 26:1-11 &lt;순종과 연약함&gt;

2.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

◇ 창 26:1-11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이삭과 두려움에 굴복하는 인간적 연약함을 보여줍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처음 도착했을 때처럼(창12:10), 그 땅에 극심한 가뭄이 들었습니다. 
이삭도 아버지처럼 애굽으로 피신하여 가뭄을 면하려고 하였습니다. 
애굽으로 가는 중 그랄땅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삭에게 애굽으로 가지말고 가나안땅에 머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땅과 자손에 대한 축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삭은 명령에 따라 더 이상 애굽으로 내려가지 않고 그랄에 머물렀습니다.

이삭은 순종의 아들입니다. 모리아산에서 번제로 드려질때 아버지에게 순종하던 모습이 하나님 앞에서도 이어집니다. 
대를 이은 순종은 하나님의 축복이 대를 이어 임하도록하는 중요한 연결고리입니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과 순간에서 순종은 우리의 하나님을 향한 신뢰를 나타내는 유일한 증표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며 순종하는 이삭도 연약한 인간입니다. 
믿음의 조상이라는 아브라함이 많은 지탄을 받는 일을 이삭도 피하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아내를 누이라 속이는 비겁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아브라함도 그러더니 아들까지도... 인간의 연약함입니다. 
생명 앞에서 보일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연약함. 자신은 절대로 선생님을 버리지 않겠다던 사람이 생각납니다. 
그러나 그도 반역자의 제자가 되는 것이 두려워 저주하고 맹세하며 선생님을 부인하고 말았습니다.

생명을 잃을 두려움 앞에서 아내를 누이라 속이며 모면하려 한 이 행동들은 지탄받아 마땅합니다. 
동시 이것이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모습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긍휼히 여김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욱 감사한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비난과 조롱과 고문을 지나 죽음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그 자리를 피하고 싶으셨을까... 그러나 그 길을 가셨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이루기 위해 말씀에 순종하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있습니다.

♧ 연약함 중에 순종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 순종으로 당신을 향한 신뢰를 증명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인간의 나약함을 긍휼히 여겨주소서, 주님의 십자가 지심에 감사드립니다. 성령님 강하고 담대하게 하소서, 아멘.]]></description>
			<author><![CDATA[향기나는교회]]></author>
			<pubDate>Fri, 24 Apr 2026 15:31:16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duftendekirche.kr/?kboard_redirect=1"><![CDATA[QT]]></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요한복음 21:15-25 &lt;회복시키시는 주님&gt;]]></title>
			<link><![CDATA[https://duftendekirche.kr/?kboard_content_redirect=95]]></link>
			<description><![CDATA[요한복음 21:15-25 &lt;회복시키시는 주님&gt;

15.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 요 21:15-25은 긿을 잃은 제자들에게 진리의 길로 이끄시는 주님의 모습입니다.

베드로와 6명의 제자들은 예루살렘을 떠나 갈릴리로 돌아왔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지만 그들은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제자의 길을 걷지 못하고 고기 잡는 일상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들은 밤새 그물을 던졌지만 잡지 못했습니다. 
멀리 뭍에서 그물을 오른쪽에 던지라는  말에 그물을 던져 많은 고기를 잡았습니다. 
그분이 선생님이시라는 것을 알고 베드로는 겉옷을 벗고 물에 뛰어들었습니다. 
뭍에는 모닥불이 피어있고 식사가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잡은 물고기를 구워 조반을 해주셨습니다.

조반을 마친 후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물으셨습니다. 
&lt;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gt; 
함께한 6명의 제자들보다 더 사랑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몇 일 전 같으면 베드로는 망설임 없이 &lt;네! 당연합니다!&gt;라고 대답했을 것입니다. 
생명을 걸고 맹세하며 앞으로 나서며 대답했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lt;네, 사랑합니다. 주님 아시잖아요&gt; 한 풀 꺽인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두 번 더 &lt;네가 나를 사랑하느냐?&gt;고 물으십니다. 
그리고 베드로의 대답을 들으실 때 마다 &lt;내 양을 먹이라, 내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gt;고 명령하십니다. 
베드로에게 구원사역의 동역자로 부르십니다.

베드로에게 하시는 세 번의 질문은 우리에게 베드로의 세 번의 부인을 떠오르게 합니다. 
호기롭게 생명을 걸고 장담하던 베드로가 세 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한 후 그의 마음이 어떠했을까요? 

예수님은 그런 베드로를 찾아오셨습니다. 
실망한 그에게 조반을 준비해서 먹이시고, 그에게 자신에 대한 사랑을 상기 시키셨습니다. 
그리고 사람을 낚는 어부로 만드시겠다는 부르실 때의 약속을(막1:17) 회복시키셨습니다. 
&lt;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gt;.
 절망으로 자신의 길을 잃은 베드로가 다시 그 길을 갈 수 있도록 예수님은 직접 찾아오셔서 회복시켜주셨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베드로처럼 호기롭게 주님을 사랑한다 말하지만 베드로처럼 그 말을 지키지 못해 실망 할 때가 많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다시 일어나기를 원하십니다. 실망하고 넘어지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 사랑의 주님, 우리의 부족함과 나약함 때문에 실망하고 절망하고 포기하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주님, 긍휼히 여겨주소서, 다시 일으켜주소서, 다시 희망과 용기 주소서, 주님 뒤를 따르게 하소서, 
성령님 강하고 담대하게 하소서, 아멘.]]></description>
			<author><![CDATA[향기나는교회]]></author>
			<pubDate>Fri, 24 Apr 2026 15:28:01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duftendekirche.kr/?kboard_redirect=1"><![CDATA[QT]]></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요한복음 20:19-31 &lt;마지막까지 사랑하신 주님&gt;]]></title>
			<link><![CDATA[https://duftendekirche.kr/?kboard_content_redirect=94]]></link>
			<description><![CDATA[요한복음 20:19-31 &lt;마지막까지 사랑하신 주님&gt;

19.○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 요 20:19-31은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 다시 살아나신 주님을 보여주시는 모습을 생생하게 증거합니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평강의 축복을 해주시고, 파송하시며 성령을 주십니다. 
그리고 요한이 이 복음서를 기록하는 목적을 알려줍니다.

제자들은 이른 새벽부터 막달라 마리아에게 예수께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제자들은 저녁때에 한 집에 모였습니다. 
아마 마리가 전한 소식에 대하여 논의하기 위함이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요한은 제자들이 모인 이 집의 분위기를 알 수 있는 묘사를 합니다. 
&lt;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문을 닫았더니&gt; 
그날 예루살렘의 분위기와 제자들이 느끼고 있는 감정이 그대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처형한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예수의 잔당들 곧 제자들을 잡으려고 혈안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갔던 곳, 머물렀던 곳, 모였던 곳을 샀샀이 뒤지고 다녔을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공포와 두려움에 빠졌를 것입니다. 
문을 닫았다는 걸어 잠갔다는 뜻입니다. 
일상적으로 집에 들어올 때 문을 닫는 것과는 달리 밖에서는 아무도 열지 못하도록 잠갔다는 것입니다.
그들 스스로 두려움에 자신들을 가두었습니다. 어쩌면 그들이 무덤 속에 갇힌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제자들의 심리적 상태를 있는 그대로 느낄 수 있는 모습입니다.

이때 집에 나타나신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lt;평강할 지어다&gt; 입니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지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 평입니다. 
예수님은 본문에서 3번이나 평강을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이 두려움을 이기고 평강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유일합니다.
 바로 죽음을 이기고 무덤에서 나오신 분을 통해서 입니다. 
예수님은 마지막까지 사랑하는 제자들을 돌보십니다. 
두려움으로 방안에 문을 걸어 잠그며 자신들을 가둔 제자들에게 평강과 자유를 주십니다. 부활의 증인으로 만들어주십니다.

제자들에게 평강을 주신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평강을 주십니다. 부활의 승리를 주십니다.

♧ 부활의 주님, 주님이 이루신 승리를 함께 누리게 하소서, 두려움에서 벗어나 승리의 증인이 되게하소서, 
마지막까지 사랑하시는 당신께 감사드립니다. 성령님 강하고 담대하게 하소서, 아멘.]]></description>
			<author><![CDATA[향기나는교회]]></author>
			<pubDate>Fri, 24 Apr 2026 15:24:37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duftendekirche.kr/?kboard_redirect=1"><![CDATA[QT]]></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요한복음 19장 &lt;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gt;]]></title>
			<link><![CDATA[https://duftendekirche.kr/?kboard_content_redirect=93]]></link>
			<description><![CDATA[요한복음 19장 &lt;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gt;

23.○군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의 옷을 취하여 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얻고 속옷도 취하니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
24.군인들이 서로 말하되 이것을 찢지 말고 누가 얻나 제비 뽑자 하니 이는 성경에 그들이 내 옷을 나누고 내 옷을 제비 뽑나이다 한 것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군인들은 이런 일을 하고
25.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어머니와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 요 19:17-27은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에 올라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과 십자가 아래 병정들과 여인들과 요한을 묘사합니다.

예수님은 관정에서 골고다까지 조롱과 모멸을 당하고,  저주를 받으며 수치스럽고 고통스럽게 올라가셨습니다. 
그가 못박힌 십자가에는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는 패가 붙었습니다.
 유대인의 대제사장들은 못마땅하여 &lt;자칭 유댜인의 왕&gt;으로 고쳐달라 요청했지만 빌라도는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가장 잔혹하고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예수님의 십자가 아래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옷을 가지고 제비뽑기를 하며 희희덕 거리고 있는 군인들과 깊은 두려움과 슬픔에 잠긴 여인들입니다.

군인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모릅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못 받아 죽이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사형수의 옷을 나누어 갖는 놀이, 전리품을 나누어 갖는 탐욕스러운 놀이를 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십자가에 못박은 예수가 누구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인들과 요한은 두려움과 슬픔에 잠겨있습니다.  
그들의 사랑하는 예수님, 하나님의 사람 예수님,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 그 분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같는 십자가 아래 있는 사람들이 전혀 다른 생각과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진리를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차이입니다. 

오늘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요?
혹시 군인들과 같은 모습은 아닌가요? 
십자가 아래 있지만 제자의 삶이 아니라 탐욕스러운 군인의 삶은 아닌가요? 
생명을 내어주시며 희생하신 십자가 아래서 탐욕을 부리고 있지는 않은가요?

♧ 나사렛 예수 유댜인의 왕 주님, 당신의 십자가 아래서 탐욕이 아니라 겸손과 섬김으로 희생하는 당신의 제자가 되게 하소, 
성령님 강하고 담대하게 하소서, 아멘.]]></description>
			<author><![CDATA[향기나는교회]]></author>
			<pubDate>Fri, 24 Apr 2026 15:22:16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duftendekirche.kr/?kboard_redirect=1"><![CDATA[QT]]></category>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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