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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향기나는 교회</title>
		<link>https://duftendekirche.kr</link>
		<description>향기나는 교회</description>
		
				<item>
			<title><![CDATA[시편 2편 &lt;모두 복을 받을 것이다&gt;]]></title>
			<link><![CDATA[https://duftendekirche.kr/?kboard_content_redirect=136]]></link>
			<description><![CDATA[시편 2편 &lt;모두 복을 받을 것이다&gt;

10.그러므로 이제, 왕들아, 지혜롭게 행동하여라. 세상의 통치자들아, 경고하는 이 말을 받아들여라.
11.두려운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고, 떨리는 마음으로 주님을 찬양하여라.
12.그의 아들에게 입맞추어라. 그렇지 않으면 그가 진노하실 것이니, 너희가, 걸어가는 그 길에서 망할 것이다. 
    그의 진노하심이 지체없이 너희에게 이를 것이다. 주님께로 피신하는 사람은 모두 복을 받을 것이다.

◇ 시편 2편은 하나님께 반역을 꾀하는 자들의 말로에 대하여 멸망을 경고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돌아오는 자는 받아주시며 그들은 복이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 반기를 들고 반역을 하는 자들은 자신들이 묶인 결박을 끊고 지유를 얻는 것으로 착각합니다.
하나님의 율법, 하나님의 구원의 길을 속박이라고 생각합니다.
복있는 사람은 밤낮으로 말씀을 묵상하여 구원의 길을 가는 반면
악인들은 같은 열정으로 하나님을 자신들의 삶에서 밀어내고 멸망의 길로 갑니다(9).
예수님의 말씀처럼 그 길은 좁으니 때로는 힘들고 때로는 고통스럽기도 합니다.
때로는 내가 원치 않는 길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길은 주님이 계획하신 구원의 길입니다.

하나님은 악인들이 그대로 멸망에 이르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그들에게 "지혜를 얻으라, 교훈을 받으라, 경외함으로 섬기라, 떨며 즐거워하라, 아들에게 입맞추라"라고 하십니다.
세상의 지혜와 교훈이 아닌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깨닫고,
하나님의 통치에 순종하는 지혜와 교훈을 구하라고 합니다.
돌아와 주님의 통치아래 거하라는 것입니다.
구원의 길에 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은 멸망이 아니라 구원입니다.
독생자 아들을 주신 목적이 무엇인가요?
하나님께로 피하는 자는 모두 복를 받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항복하는 것은 패배가 아니라 승리입니다.
주님을 인정하고 무릎끓을때 우리의 모습과 위치가 분명해집니다.

♧ 자비로우신 하나님, 당신의 모든 피조물이 구원받기를 원하시며 그것이 당신의 마음임을 잊지않게 하소서,
당신에게 무릎꿇고 순종하는 것이 진정한 승리임을 잊지않게 하소서, 성령님 강하고 담대하게 하소서, 아멘.]]></description>
			<author><![CDATA[향기나는교회]]></author>
			<pubDate>Wed, 15 Jul 2026 10:23:45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duftendekirche.kr/?kboard_redirect=1"><![CDATA[QT]]></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시편 1:1-6 &lt;복있는 사람&gt;]]></title>
			<link><![CDATA[https://duftendekirche.kr/?kboard_content_redirect=135]]></link>
			<description><![CDATA[시편 1:1-6 &lt;복있는 사람&gt;

1.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며,
2.오로지 주님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밤낮으로 율법을 묵상하는 사람이다.

◇ 시편 1편은 복으로 시작해서 악인으로 끝이납니다.
복있는 의인들은 하나님의 인정을 받고 악인들은 망할 것이라고 시인은 노래합니다.

복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소리에 귀를 열지 않습니다.
악인들의 감언이설에 주목하지 않습니다.
귀를 열어 악인들의 소리를 듣기 시작하면 마음이 동하기 시작합니다.
마음이 움직이면 행동을 시작합니다.
악인들의 소리를 듣고 그 소리에 동의하고 같은 생각을 갖고 같은 행동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행동들은 그들을 오만, 교만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부하고 하나님을 조롱하는 자리에 머물게 됩니다.

복있는 사람은 잘 듣는 사람입니다.
악인의 꾀/지혜/계획이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이 복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음성, 곧 하나님의 율법을 밤낮 가릴 것 없이 즐거워하고 묵상하는 것입니다.
홀로 조용히 말씀을 읇조리는 것이 묵상입니다.
말씀을 곱씹는 것, 소가 되새김질하듯이 말씀을 되새김질 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묵생입니다.

이렇게 홀로 조용히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의 음성에 귀기울이는 사람은
철을 따라 열매를 맺는 시냇가에 심기운 나무가 됩니다.
멸망하는 악인들, 악인의 소리에 귀기울인 사람들과는 달리 하나님과 함께 형통한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고 그 음성에 순종하여 하나님과 함께하는 인생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 선하고 자비로우신 하나님, 우리의 귀가 당신을 향해 열려있게 하소서,
악인의 꾐, 감언이설에 귀를 열지 않게 하소서, 악인의 길에 서지 않고 당신의 길위에 서게하소서,
성령님 강하고 담대하게 하소서, 아멘.]]></description>
			<author><![CDATA[향기나는교회]]></author>
			<pubDate>Wed, 15 Jul 2026 10:20:27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duftendekirche.kr/?kboard_redirect=1"><![CDATA[QT]]></category>
		</item>
				<item>
			<title><![CDATA[고린도전서 16장 &lt;미리, 형편에 따라&gt;]]></title>
			<link><![CDATA[https://duftendekirche.kr/?kboard_content_redirect=134]]></link>
			<description><![CDATA[고린도전서 16장 &lt;미리, 형편에 따라&gt;

2.매주 첫날에, 여러분은 저마다 수입에 따라 얼마씩을 따로 저축해 두십시오.
그래서 내가 갈 때에, 그제야 헌금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 바울은 구제를 위한 연보(기부)에 대하여 이야기합니다.

연보(헬, 로케이아)는 고전 16:1에만 쓰인 단어입니다.
당시 이 단어는 종종 종교를 위한 모금이나 황제에게 바치는 세금을 뜻하기도 했습니다.
교회가 조직적으로 준비하고 관리해야하는 공적인 일임을 분명히 합니다.

바울은 액수를 정하지 않았습니다.
수입에따라 모아두라고 합니다.
자신들이 도착하였을때에 급하게 내지 말고 미리 준비하라고 합니다.
헌금은 율법적 의무로 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로, 형통하게 하신 만큼 자발적으로 청지기적인 응답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많이 받은 사람은 많이 내서 부족한 이들을 채워주는 것입니다.
또한 헌금은 즉흥적인 것이 아니라 미리 준비하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는 예배를 소망하며 준비하는 것입니다.

고린도교회의 연보는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이방 교회가 기근과 핍박에 시달리는 예루사람 교회를 섬김으로
유대인과 이방인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의 실현입니다.
서로 무시하고 멸시하던 이들이 그리스도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으시고 좋다고 흐뭇해하시는 그 모습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 사랑의 주님,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함에 진실되게 하소서,
당신이 베푸신 은혜에 버금가게 베풀며 헌신하며 살아가게 하소서,
주신 것을 청지기의 사명으로 관리하며 주의 뜻에 합당하게 사용하게 하소서,
성령님 강하고 담대하게 하소서, 아멘.]]></description>
			<author><![CDATA[향기나는교회]]></author>
			<pubDate>Tue, 14 Jul 2026 11:51:27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duftendekirche.kr/?kboard_redirect=1"><![CDATA[QT]]></category>
		</item>
				<item>
			<title><![CDATA[고린도전서 15:1-11 &lt;부활의 복음&gt;]]></title>
			<link><![CDATA[https://duftendekirche.kr/?kboard_content_redirect=133]]></link>
			<description><![CDATA[고린도전서 15:1-11 &lt;부활의 복음&gt;

3.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4.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5.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6.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 바울은 15장에서 부활에대하여 이야기합니다.

복음의 핵심인 부활은 자신이 깨닫거나 지어낸 것이 아니라
제자들에게 받은 것을 전해주는 것이며 성경대로 이루어진 것임을 전합니다.
부활은 바울이 새롭게 만들어낸 것이 아닙니다.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것 또한 바울이 발견하고 만들어낸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자신이 전하는 것은 구약성경에서 이미 선지자들을 통하여 예언되고
예수를 통하여 이루어진 것을 제자들이 선포하고 그것을 자신도 전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죽음이나 부활이 우발적인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적인 구원역사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많은 증인들을 열거함으로 부활의 역사성을 이야기합니다.
먼저는 12제자들에게 나타나셨고, 500여명에게 동시에 보이셨으며,
특히 그들중에 대다수는 살아있다는 것입니다.
못믿겠으면 증인들을 보여줄 수도 있다는 자신감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에게 보이셨습니다.
생전에는 믿지 않았던 그가 왜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후에 변화되었을까.
변화의 원인은 부활한 주님을 만났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자신이 부활의 증인이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도를 따르는 자들을 박해하는 일에 열정적으로 앞장섰던 자신이 변하여
그 도를 전하는 사도가 된 이유가 바로 부활한 주님을 만났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부활신앙은 한 개인의 체험을 통해서 만들어진 허구가 아니며 개인적인 깨달음이 아님을 강력히 밝히는 것입니다.
12제자들, 500여명이 넘는 사람들, 믿지않고 박해하던 사람들의 변화를 통해서
예수님 부활의 객관성과 역사성을 논증하는 것입니다.

죽음에서 다시 살아는 부활은 자연법칙에 역행하는 것이며 비상식적인 일입니다.
그러나 그 일은 하나님의 구원계획에 의해서 이루어졌습니다.
믿기지않는 일이며 우리의 일상에서 이루어지는 일은 아니지만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 이루셨습니다.

"2.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이 구원을 받으리라"

♧ 전능하신 하나님, 우리 인간의 악함을 아시고 구원계획을 세우신 그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그 죄인들을 버리지 않으시고 귀한 아들을 내어주고 구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 구원의 역사를 믿고, 부활의 소망을 갖게하소서, 성령님 강하고 담대하게 하소서, 아멘.]]></description>
			<author><![CDATA[향기나는교회]]></author>
			<pubDate>Tue, 14 Jul 2026 11:48:32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duftendekirche.kr/?kboard_redirect=1"><![CDATA[QT]]></category>
		</item>
				<item>
			<title><![CDATA[고린도전서 14:26-33 &lt;질서와 절제&gt;]]></title>
			<link><![CDATA[https://duftendekirche.kr/?kboard_content_redirect=132]]></link>
			<description><![CDATA[고린도전서 14:26-33 &lt;질서와 절제&gt;

26.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까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 바울은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해 질서있게 하고 절제 할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고린도교회의 예배에 대하여 질서와 절제를 강조하는 것을 보면
예배에 질서와 절제가 없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2장은 오순절 성령강림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고합니다.
오순절에 다같이 모여 기도할때에 성령이 불같이 임했고 방언을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보고 놀라워했지만 어떤이들은 방언하는 이들을 새술에 취했다고 조롱했다고 합니다.

성령의 은사로 일어나는 일들이 어떤 이들에게는 놀라운 감탄의 일로
또 어떤이들에게는 조롱거리로 보이기도 한다는 것에 주목해야합니다.
아마도 이런 이유로 바울은 성령의 은사를 드러내는 일에 질서와 절제를 요청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방언은 차례대로 하고, 방언은 통역을 하고, 통역이 없으면 잠잠하고,
예언도 분별을 하고, 누군가 갑자기 예언을 하면 먼저하던 사람은 절제를 하고...

만약에 질서와 절제가 없이 방언과 예언이 행해진다면
그것을 보는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을 할까요?
특히 믿지 않는 사람들의 눈에 어떻게 보일까요?

이방종교가 황홀경에 빠져 통제불능 상태가되는 것을 영적인 수준이 높은 것으로 보았다면,
성령님은 지성과 의지를 가지고 스스로 절제하게하시는 인격적인 영이십니다.

고린도교회의 위기는 은사의 결핍이 아니라 각자가 자신의 영적 탁월함을 과시하려한 은사 과잉과 무질서 였습니다.
참된 성령의 임재는 통제불능의 신비체험이나 개인의 영적 우월감을 뽐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 회중 전체를 세우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조화롭고 질서있는 모습이 필요합니다.

33.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 화평의 하나님, 당신이 주신 은사로 나를 뽐내고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형제와 자매들을 세우는 일에 사용하게 하소서,
언제나 겸손과 섬김을 잃지 않게 하소서, 성령님 강하고 담대하게 하소서, 아멘.]]></description>
			<author><![CDATA[향기나는교회]]></author>
			<pubDate>Tue, 14 Jul 2026 11:44:20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duftendekirche.kr/?kboard_redirect=1"><![CDATA[QT]]></category>
		</item>
				<item>
			<title><![CDATA[고린도전서 12:1-11 &lt;열매는 다르지만 뿌리는 하나&gt;]]></title>
			<link><![CDATA[https://duftendekirche.kr/?kboard_content_redirect=131]]></link>
			<description><![CDATA[고린도전서 12:1-11 &lt;열매는 다르지만 뿌리는 하나&gt;

4.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5.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6.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7.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 바울은 12:1-11절에서 성령의 다양한 은사에 대하여 이야기하며
그 출처는 같은 성령, 같은 주, 같은 하나님을 강조합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의 본 모습은 분쟁과 분열이 아니라 협력과 연합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의 분쟁과 분열은 심각했던 것 같습니다.
편지의 시작부터 파당을 짓고 서로 분쟁하는 것을 책망했고,
11장에서는 주의 만찬을 예로 들며 성도들을 돌아보지 않고 행하는 것을 죄라고 하였습니다(11:27).

12장은 그 뒤를 이어 성령의 은사를 두고도 분쟁하고 분열하는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을 책망합니다.
성령의 은사는 모양은 다르지만 모두 한 분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모두 같다는 것입니다.
다양한 성령의 은사를 받은 사람들은 자신이 최고라고 자랑하며 다른 은사를 받은 사람들과 경쟁을 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외적인 성령의 은사를 나태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성령을 받지 못했다고 무시했을 것입니다.

우리의 뿌리는 모두 한 하나님이십니다.
치유의 은사도, 가르치는 은사도, 방언의 은사도 모두 한 분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성령의 은사/열매를 지닌 사람도 있습니다(갈5:22-23).
주님의 모된 교회와 성도들을 섬겨 유익하게 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자랑하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는 공동체에는 분쟁이 없습니다.
서로를 섬기는 공동체에는 분열이 없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최고라고, 자신만이 옳고 바르다고 하는 공동체는 분쟁하고 분열하고 무너지고 맙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피로 세워졌습니다.
겸손히 자신을 낮추시고 죄인을 섬기신 예수님의 피로 세워졌습니다.
그렇게 세워진 교회 안에 겸손과 섬김이 아니라 자랑과 교만이 가득한 것은 주님의 뜻이 아닙니다.
주님의 십자가에 죄를 짓는 것입니다.

♧ 제자들의 발을 씨겨주신 주님, 우리가 주님의 마음을 품고 겸손히 섬기는 자들이 되게 하소서,
하나님께서 주신 성령의 은사들을 나를 자랑하는 도구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교회와 성도들의 유익을 위하여 사용하게 하소서,
우리는 모두 한 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자리에 있음을 잊지 않게 하소서, 서로 협력하고 연합하게 하소서,
성령님 강하고 담대하게 하소서, 아멘.]]></description>
			<author><![CDATA[향기나는교회]]></author>
			<pubDate>Tue, 14 Jul 2026 11:40:52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duftendekirche.kr/?kboard_redirect=1"><![CDATA[QT]]></category>
		</item>
				<item>
			<title><![CDATA[고전 11:17-34 &lt;합당하게 먹고 마시는 것&gt;]]></title>
			<link><![CDATA[https://duftendekirche.kr/?kboard_content_redirect=130]]></link>
			<description><![CDATA[고전 11:17-34 &lt;합당하게 먹고 마시는 것&gt;

27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이니라
28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29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30 그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
31 우리가 우리를 살폈으면 판단을 받지 아니하려니와

◇ 바울은 고린도교회에서 주의 만찬으로 인해 발생한 문제에 대하여 교회에 권면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구원계획에 순종하여
인간들을 위하여 희생제물로 내어주신 몸과 피를 상징하는 떡과 잔을 먹고 마시는 것으로 인해
고린도 교회는 큰 분쟁이 일어났습니다.
주일에 예배를 드리러 먼저 와서 자신들이 가져온 음식들을 먼저 먹고 마심으로 인해 발생한 문제입니다.
부유한 사람들은 일찍 모였을 것이고, 고급진 음식을 여유있게 가지고 왔을 것입니다.
그리고 넓은 개인 집의 좋은 자리를 차지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 일용직 근로자들, 혹은 노예들은 자신들의 일을 마치고 오느라 늦게 왔을 것이고
혹 가지고 왔다고 해도 그들의 음식은 초라했을 것입니다.
어쩌면 음식을 준비하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리가 없어서 마당에서 서성거리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먼저 온 사람들은 이미 만찬을 시작했고 배부르고 취할 정도로 많이 먹고 마셨습니다.
하지만 늦게 온 사람들은 먹을 것이 없어 허기와 목마름으로 있었습니다(21).

바울은 유월절 만찬에서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떡과 잔을 주시며 하신 말씀을 상기시켰습니다.
떡은 주님의 몸이고, 잔은 주님의 피라고,
이것은 바로 제자들 곧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시는 것이라고 하시며
잊지 말고 기억하라고 하셨음을 상기시켰습니다.

바울은 주의 만찬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들은 주의 몸과 피에 죄를 짓는 것이라고 선언합니다(27).
모두를 위하여 내어주신 그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시면서,
주변의 교우들은 살피지 않고 자신만 배불리고 먹고 마셔서 취하는 것이 주의 만찬에 합당한가를 질문하고 있습니다.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신다는 것은 공동체의 연합을 깨뜨리고
가난한 형제를 소외시키며 탐스럽게 먹는 잘못된 태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또 29절에서는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것은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몸은 성찬의 떡을 의미하면서 동시에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 공동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27절과 연결하여 생각해보면 교회 공동체를 살피지 않고 그들을 차별하며 존중하지 않고
떡과 잔을 먹고 마시는 것은 주님의 몸을 분별하지 않는 죄라는 것입니다.

33절에서 바울은 “서로 기다리라”고 합니다.
배고픔을 참고 형제를 기다리는 행위는 그리스도의 몸을 분별하는 사랑의 실천이며,
주님의 희생과 섬김을 따라가는 제자도입니다.
분쟁을 연합으로 이끌어가는 무너진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길입니다.

♧ 몸과 피, 생명을 내어주신 주님, 당신의 피로 산 형제자매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죄를 범하지 않게 하소서,
당신의 피로 산 형제자매들을 당신이 하신 것처럼 사랑하며 존중하게 하소서,
주님의 살과 피를 떡과 잔을 마실 때마다 기억하게하소서,
성령님 강하고 담대하게 하소서, 아멘.]]></description>
			<author><![CDATA[향기나는교회]]></author>
			<pubDate>Tue, 14 Jul 2026 11:29:18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duftendekirche.kr/?kboard_redirect=1"><![CDATA[QT]]></category>
		</item>
				<item>
			<title><![CDATA[고린도전서 11:2-16 &lt;모든 것은 하나님으로 부터&gt;]]></title>
			<link><![CDATA[https://duftendekirche.kr/?kboard_content_redirect=129]]></link>
			<description><![CDATA[고린도전서 11:2-16 &lt;모든 것은 하나님으로 부터&gt;

11 "그러나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니라.
12 이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 같이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났음이라. 그러나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서 났느니라."

◇ 고린도전서 11장은 머리수건이나 창조순서 같은 바울이 살던 1세기 문화적 종교적 배경 이 깊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때문에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읽기에는 다소 생소하고 어렵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본문의 중심이 되는 11절과 12절은 2000년의 긴 시간을 뛰어넘는 복음의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

바울은 주 안에서 남녀가 결코 분리되거나 차별된 존재가 아니라,
서로에게 절대적으로 의존적인 존재임을 명확히 합니다.
그리스도의 교제 안에서 여성이 남성에게 필수적인 만큼, 남성 또한 여성에게 필수적입니다.
복음은 누가 누구 위에 군림하거나 지배하는 수직적 서열을 거부하고,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온전한 동료(동역자)관계를 요청합니다.

우리는 가정과 직장, 교회에서 상대를 '나를 돋보이게 하는 보조자'로 보지 않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상대가 없으면 나 또한 온전해질 수 없는 동등한 한 몸의 지체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끊임없이 기준을 만들어 서열을 매기고 주도권을 쟁취하려 합니다.
고린도 교회에는 창조의 순서로 남자와 여자의 서열의 매기고 남자가 여자 위에 군림하려는 풍조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에 바울은 12절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니다.

"이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 같이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났음이라."

창조의 순서상 여자가 남자에게서 갈비뼈에서 나왔기에 남자가 시작점인 것 같지만,
자연법칙에서 모든 남자는 여자의 해산을 통해 세상에 태어납니다.
바울의 이 선언은 인간들의 서열주의와 남성 우위사상의 신화를 깨뜨리는 것입니다.
주 안에서 높고 낮음은 없습니다.
오직 서로를 향한 고마움과 존중만이 있을 뿐입니다.

바울은 12절 끝에서 "그러나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서 났느니라"고 마침표를 찍습니다.
이 한 문장은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비교와 자랑을 단숨에 잠재웁니다.
우리의 성별, 은사, 삶의 자리는 나의 성취가 아니라 하나님이 값없이 주신 선물입니다.
내가 가진 조건이나 직분이 나의 우월함이 아닙니다.
그 모든 것의 출처가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곳은 상대방의 조건이 아니라,
모든 것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선하신 뜻입니다.
내가 공동체 안에서 누리는 자유와 권위는 공동체원들을 지배하기 위함이 아니라,
모든 것의 주인 되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함입니다.

♧ 사랑과 질서의 하나님 아버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죄부터 자유하게 하시고,
하나님 앞에서 아무런 차별 없는 고귀한 자녀로 불러주심에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세상의 눈으로 서로를 비교하고, 지배하려 하며, 주도권을 잡으려 할 때가 많습니다.
주 안에서 남자와 여자가, 그리고 우리 모든 지체가 서로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필수적 동반자임을 매 순간 고백하게 하옵소서.
교회와 가정 안에서 가부장적인 권위주의나 차별의 시선을 걷어내게 하시고,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오직 하나님 한 분으로부터 온 선물임을 기억하게 하소서.
성령님 강하고 담대하게 하소서, 아멘.]]></description>
			<author><![CDATA[향기나는교회]]></author>
			<pubDate>Tue, 14 Jul 2026 11:23:10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duftendekirche.kr/?kboard_redirect=1"><![CDATA[QT]]></category>
		</item>
				<item>
			<title><![CDATA[고린도전서 10:14-33 &lt;그리스도인의 자유&gt;]]></title>
			<link><![CDATA[https://duftendekirche.kr/?kboard_content_redirect=128]]></link>
			<description><![CDATA[고린도전서 10:14-33 &lt;그리스도인의 자유&gt;

23.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
24.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 바울은 고린도성도들에게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대하여 이야기합니다.
고린도 성도들 중에는 자신들은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받았으므로
이전에 자신들을 속박하던 모든 율법적 조항들이나 종교적인 관습들, 사회적 관습들로부터 자유를 주장했습니다.
그러한 그들의 행동들은 교회의 다른 성도들을 실족케했습니다.
이에 바울은 우상숭배와 성찬을 비교하며, 어떻게하는 것이 진정한 자유인지를 설명합니다.

그들은 이방신전에서 먹고 마시며 우상숭배자들과 교제를 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고린도교회에는 신앙이 흔들리는 이들이 있었고,
교회에는 논쟁이 격화되고 혼란에 빠졌습니다.
그들의 스스로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고 자유롭다고 하지만 그들로 인해 고린도교회는 혼란에 빠진 것입니다.

바울은 신전에서 우상숭배자들과 함께 제물을 먹고 마시는 이들을 책망합니다.
그것은 그들이 우상숭배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예배를 드리며 주님의 몸과 피를 상징하는 성찬에 참여하는 것이 주님과 하나가 되는 것이듯,
이방신전에서 우상숭배자들과 함께 그들의 제물을 먹고 마시는 것은 우상과 하나가 되는 우상숭배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세상의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것이기에(26, 시24:1),
본래 선한 것이며,
우상에게 바쳐진 고기의 본질이 악하게 변하거나 오염되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바울이 말하는 것은 음식자체의 문제가 아닙니다.
신전에서 먹는 것의 의미와 그 것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 때문입니다.
우상자체나 제물은 아무것도 아닙니다(8:4).
그러나 그 배후에 실재하는 악한 영, 그리고 교회의 분열과 성도들의 실족함은 큰 일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자들에게 연자맷돌을 매고 물에 빠지는 것이 더 낫다고 하셨습니다(마 18:6).

바울은 모든 것이 허락되었지만 모든 것이 유익하지 않고,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내가 아니라 타인의 유익을 위하여 자유를 사용하라고 합니다.
공동체의 유익을 해칠때는 나의 자유를 스스로 제한할 수 있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지유라고 합니다.

부모가 되면 아이를 돌보느라 자유를 포기해야합니다.
포기한 자유는 사랑하는 아이를 성장하게 하는 자양분이 됩니다.
예수께서 포기한 자유는 우리에게 구원,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포기는 누군가의 새로운 삶을 위한 자양분이 될 것입니다.

♧ 선하신 주님, 우리를 위해 희생하신 주님 생명을 내어주신 주님, 감사합니다.
이제 우리가 그런 희생을 본받게 하소서,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자유를 내려놓으셨듯이
다른 이들을 위해 나의 자유를, 권리를 내려 놓을수 있는 희생과 섬김의 마음이 있게 하소서,
성령님 강하고 담대하게 하소서, 아멘.]]></description>
			<author><![CDATA[향기나는교회]]></author>
			<pubDate>Tue, 14 Jul 2026 11:01:59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duftendekirche.kr/?kboard_redirect=1"><![CDATA[QT]]></category>
		</item>
				<item>
			<title><![CDATA[고린도전서 10:1-13 &lt;구원의 여정은 끝나지 않았다&gt;]]></title>
			<link><![CDATA[https://duftendekirche.kr/?kboard_content_redirect=127]]></link>
			<description><![CDATA[고린도전서 10:1-13 &lt;구원의 여정은 끝나지 않았다&gt;

 12.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 바울은 선줄로 생각하는 사람은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권면합니다. 
이것은 구원 받은 줄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멸망을 받을까 조심하고 항상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를 위해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예로들고 있습니다. 
모세와 하께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출애굽한 이스라엘백성들은 요단강을 건너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모세와 아론 조차도 말입니다. 
출애굽할때 그들은 모두 이제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갈 것이라고 믿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소망을 이루지 못하고 광야에 묻혔습니다.

바울은 그들이 모세와 함께 바다 가운데로 지난 것을 그리스도인들이 받은 세례와 같은 것으로 해석합니다(2), 
그리고 광야에서 신령한 음식(만나)과 음료(반석에서 나온 샘물)를 먹고 마신 것은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먹는 성찬과 같은 것을 해석합니다(3-4). 
출애굽한 이스라엘백성들이 이렇게 거룩하게 세례를 받고 
성찬과 같은 하나님이 주신 신령한 음식괴 음료를 마셨지만 
그들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멸망을 당하였급니다. 

바울은 그 이유를 하나님이 그들을 기뻐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라고 합니다(5). 
바울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은 악행을 4가지 이야기합니다. 
우상숭배, 음행, 하나님을 시험함, 원망. 이런 악행을 저지르다가 
그들은 약속받은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멸망당했습니다(6-10).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지만 하나님은 그들과 그 약속을 지키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이 악을 행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광야에서 멸망한 이스라엘백성들을 교훈삼으라고합니다. 
세례를 받고 성찬을 한다고 구원의 여정이 끝난 것이 아님을 명심하라는 것입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백성들이 했던 것 같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일들을 행하면 
세례를 받고 성찬을 한다 할지라도 그들처럼 멸망을 받을 것임을 경고하고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구원의 여정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구원받은 자의 삶을 살아내야합니다. 
바울은 자신의 삶의 여정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습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빌 3:12)

♧ 선하고 자비로우신 하나님, 은혜로 구원받음에 감사합니다. 
바울의 권면을 잊지않고 명심하게 하소서, 선줄로 착각하지 말고 바로서기 위해 항상 노력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성령님 강하고 담대하게 하소서, 아멘.]]></description>
			<author><![CDATA[향기나는교회]]></author>
			<pubDate>Tue, 14 Jul 2026 10:56:21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duftendekirche.kr/?kboard_redirect=1"><![CDATA[QT]]></category>
		</item>
				<item>
			<title><![CDATA[고린도전서 6:1-11 &lt;하나님의 영광을 위해&gt;]]></title>
			<link><![CDATA[https://duftendekirche.kr/?kboard_content_redirect=126]]></link>
			<description><![CDATA[고린도전서 6:1-11 &lt;하나님의 영광을 위해&gt;

1.너희 중에 누가 다른 이와 더불어 다툼이 있는데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 고발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
6.형제가 형제와 더불어 고발할 뿐더러 믿지 아니하는 자들 앞에서 하느냐

◇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간에 생긴 분쟁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세상 법정에 고발하고 그 곳에서 해결하는 것을 책망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누구인가? 
바울은 세상 마지막 날에 천사도 판단할 수 있는 권세자들이라고 합니다. 
그런 그리스도인들이 불의한 사람들, 
그리스도의 피로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에게 판단을 받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법정에 서서 재판을 받고 판단을 받는 그리스도인들, 곧 교회가 예수를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에게 권위가 서겠습니까? 
더 나아가 하나님이 영광을 받을 수 있을까요?

오래전 버스를 타고 가는데 큰 교회 예배당에 온갖 현수막이 걸려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교회내의 분쟁으로 서로 비방하는 문구들이 교회 벽을 도배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분쟁은 법정으로 갔고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었습니다. 
그들만이 아니라 주님의 몸된 교회와 하나님도 조롱거리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얼마간의 물질적 이익을 취하고 억울한 일이 해소되었을 수 있습니다. 
자신들이 옳았다고, 자신들이 이겼다고 만족하고 기뻤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몸된 교회는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바닥에 떨어져 밟히고 세상 사람들의 입에서 조롱거리기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를 입은 사람들입니다.
십자가의 피를 통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 입니다. 
그 십자가의 피, 그 피는 사랑의 피입니다. 용서의 피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잊지 말아야할 피의 의미입니다. 
십자가는 사랑과 용서로 역사하는 정의입니다. 
말씀을 떠난 정의, 사랑을 잃은 정의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그 고통스런 십자가에 달리시며 어떠하셨을까요? 
스데반은 돌에 맞으면서 어떠하였을까요? 
예수님의 십자가에 못받히심과 스데반의 돌에 맞음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입니다. 
사나 죽으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 사랑과 용서의 하나님, 예수님과 스데반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게 하소서, 
좀 억울하더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참고 용서하게 하소서, 
가슴이 터질 것 같고 눈물이 솟구쳐 올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인내하게하소서, 
성령님 강하고 담대하게 하소서, 아멘.]]></description>
			<author><![CDATA[향기나는교회]]></author>
			<pubDate>Tue, 14 Jul 2026 10:50:20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duftendekirche.kr/?kboard_redirect=1"><![CDATA[QT]]></category>
		</item>
				<item>
			<title><![CDATA[고린도전서 5:1-13 &lt;작은 누룩을 버리라&gt;]]></title>
			<link><![CDATA[https://duftendekirche.kr/?kboard_content_redirect=125]]></link>
			<description><![CDATA[고린도전서 5:1-13 &lt;작은 누룩을 버리라&gt;

 1.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그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서도 없는 것이라 누가 그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

 ◇ 바울은 고린도교인들에게 교회 밖의 사람들도 행하지 않는 악행을 버리고, 그런 악을 행하는 자들을 치리하라고 합니다. 
나는 바울, 아볼로, 베드로에게 침례를 받고 구원받았다고 자랑하고, 
또 내가 누구에게 침례를 받았으니 정말 정통성이 있는 그리스도의 제자라고 자랑하는 자들에게 자랑하지 말고 
교회를 위해 그런 악을 행하는 자들을 치리하라고 일침을 가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교인들의 세상 사람들조차도 행하지 않는 음행과 탐욕, 우상숭배, 모욕, 술취함, 속이고 빼앗은 악행들을 버리라고 합니다. 
그런 악행을 용납하는 것을 반죽에 누룩을 넣는 것에 비유합니다. 
작은 누룩이 전체 반죽을 부풀리듯이 방치한 악행이 공동체 전체를 무너뜨릴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단호하게 그들을 치리하라고 합니다.
교회안에서 그리스도의 제자라고 하면서 이런 악행을 저지르는 그런 자들과 사귀지도 말고 함께 먹지도 말라고 합니다(11). 
그리고 사탄에게 내주어서(=출교) 육은 멸하고 영은 구원받게 하라고 합니다(5).

 바울은 그런 악행을 저지르는 자들을 용납하는 교회공동체에 그들을 출교 하라고 합니다(5). 
그렇게 해서라도 깨닫고 회개하여 악행의 삶에서 순전한 삶으로 돌아서게 하라고 합니다. 
출교는 회개하여 마지막 그리스도의 날에 구원에 이르게 하려는 것입니다(5).

본문의 고린도교회는 오늘날 우리가 뉴스를 통해 보는 교회의 모습입니다. 
교회 밖 세상보다 더 탐욕스럽고 거짓이 난무하고 음행을 눈감아주는 그런 교회들... 
구원받았다고 자랑하지만 결국 세상 사람들에게 오히려 손가락질 당하는 교회들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회칠한 무덤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런 교회들이 아니라 남겨진 7000의 하나님의 사람들, 
세상 속 어딘가에서 순전하고 진실하게 살아가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통해 하나님은 구원계획을 이루어 가십니다. 
실망하지 말고 남겨진 7000명이 됩시다. 
되려고 애씁시다. 성령님의 도움을 구합시다.

 ♧ 공의와 자비의 하나님, 교회 밖 세상에서도 행하지 않는 악행을 저지르는 교회가 되지 않게 하소서, 
그것을 방치하는 교회가 되지 않게 하소서, 그런 누룩과 같은 악행들을 버리게 하소서, 성령님 도와주소서, 아멘.]]></description>
			<author><![CDATA[향기나는교회]]></author>
			<pubDate>Tue, 14 Jul 2026 10:44:35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duftendekirche.kr/?kboard_redirect=1"><![CDATA[QT]]></category>
		</item>
				<item>
			<title><![CDATA[고린도전서 3:1-15 &lt;우리는 하나님의 심부름꾼들&gt;]]></title>
			<link><![CDATA[https://duftendekirche.kr/?kboard_content_redirect=124]]></link>
			<description><![CDATA[고린도전서 3:1-15 &lt;우리는 하나님의 심부름꾼들&gt;

5.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냐 그들은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 &lt;교회에서 지도자라고 불림을 받는 사람들, 우리들은 모두 겸손합시다&gt; 3:1-15 에서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하는 말입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자신과 아볼로를 우두머리로 하여 파당을 짓고 분쟁하는 것을 책망하고 있습니다.
자신과 아볼로는 교회의 우두머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일꾼(사역자)이라고 합니다(5).
사역자는 "디아코노스"로 일꾼, 식탁을 섬기는 자, 심부름꾼이라는 의미입니다.
자신들은 우두머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일꾼들일 뿐이라는 것을 분명히합니다.
9절에서 자신들을 동역자라고 부르는데 이것 또한 자신들을 겸손히 낮추는 말입니다.
"쉬네르고스"는 하나님께 속한 일꾼, 조력자, 조수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과 어깨를 나란히하는 동격의 의미가 아닙니다.

바울은 교회의 터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분명히 고백합니다(11).
바울은 앞 단락에서 자신들이 전하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 뿐임을 고백하며(3:2),
교회의 모든 능력은 성령님과 하나님으로부터 나타나심이라고 밝혔습니다(3:5).
아볼로와 바울은 단지 하나님과 성령님의 부름에 따른 맡은 일에 충성을 다하는 일꾼, 조력자일 뿐인 것입니다.
그 이하도 그 이상도 아닙니다.
사람들은 그들을 존경하고 따르지만 그들은 자신의 신분을 자각하고 겸손히 맡은 일에 충성해야 함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대리자가 주제를 망각할 때가 많습니다.
자신을 부르고 세워 보낸 분과 동일시하는 것입니다.
자신들을 세워주신 하나님인 줄 착각합니다.
그들의 말로는 참으로 비참할 뿐입니다.

바울은 이런 사역자들, 일꾼들에 대하여 종말론적 불심판의 비유로 마무리합니다.
이런 자들의 일은 모두 불타고 남는 것이 없을 것이라고...

겸손하게 섬깁시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고전 4:2

♧ 능력의 하나님, 내가 누구인지 분명히 깨닫고 알게 하소서, 나에게 맡겨주신 일에 겸손히 성실하게 충성하게 하소서,
성령님 강하고 담대하게 하소서, 아멘.]]></description>
			<author><![CDATA[향기나는교회]]></author>
			<pubDate>Mon, 13 Jul 2026 14:50:21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duftendekirche.kr/?kboard_redirect=1"><![CDATA[QT]]></category>
		</item>
				<item>
			<title><![CDATA[고린도전서 2:1-16 &lt;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gt;]]></title>
			<link><![CDATA[https://duftendekirche.kr/?kboard_content_redirect=123]]></link>
			<description><![CDATA[고린도전서 2:1-16 &lt;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gt;

2.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 고전 2:1-16은 고린도에서 바울이 전한 복음과 그 복음을 어떻게 전했는지에 대하여 이야기합니다.

바울은 고린도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도착했을 때 자신의 상태를 이렇게 말합니다.
&lt;약하고 두렵고 심히 떨었다&gt;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일에 자신 만만하지 못했습니다.
두렵고 떨려서 아주 약해졌음을 스스로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이방의 웅장한 종교들과 철학적 논증, 화려한 논리와 연설들과 수사학들로 가득한 고린도에서
바울은 십자가에 달려 죽은 예수를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로 전해야했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은 사람을 하나님의 아들로, 구원자로 전할 때 고린도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를
바울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익힌 논리와 수사학으로 멋지게 연설한다고 해도
고린도 사람들이 설득되고 빋아들일리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두렵고 떨렸던 것입니다.
한 없이 약해져 있었습니다.

그때 바울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따라했습니다.
자기 비움과 인간의 지혜로는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경륜,
세상을 움직이시는 하나님 질서를 나타내는 십자가,
자신은 죽이고 하나님만 드러나도록 하는 십자가의 방법을 좇은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포장하기 위해 어떤 논리적은 연설도 웅변도, 수사학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는 그리스도요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고 죄에서 자유를 주셨다고 선포하였습니다.
인간들의 지혜와 방법을 의지하지 않고 오로지 성령의 나타나심과 성령의 능력,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였습니다.

바울은 오직 성령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고 사람들이 듣고 싶은 말이 아니라 들어야 하는 말을 전하였던 것입니다.
자기가 일한 것이 아니라 성령님이 하나님이 일하도록 하였습니다.
자기가 아니라 하나님, 성령님이 드러나도록 하였습니다.

♧ 인간의 지혜로 이해할 수 없는 방법으로 일하시는 하나님, 나를 내려놓고 성령님을 의지하게 하소서,
하나님의 능력에 맡기고 충성하게 하소서, 두렵고 떨리지만 강하고 담대하게 하소서, 아멘.]]></description>
			<author><![CDATA[향기나는교회]]></author>
			<pubDate>Mon, 13 Jul 2026 14:47:24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duftendekirche.kr/?kboard_redirect=1"><![CDATA[QT]]></category>
		</item>
				<item>
			<title><![CDATA[고린도전서 1:18-31 &lt;우리의 자랑할 것&gt;]]></title>
			<link><![CDATA[https://duftendekirche.kr/?kboard_content_redirect=122]]></link>
			<description><![CDATA[고린도전서 1:18-31 &lt;우리의 자랑할 것&gt;

29.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 바울이 고린도 성도들에게 보내는 편지의 첫째 본론은 하나가 되라는 것입니다. 
서로 나뉘어 싸우지 말고 한 마음, 한 뜻으로 하나가 되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분열하며 파당을 짓고 서로 싸우는 원인은 자기 자랑때문입니다. 
나는 게바파다, 나는 아볼로파다, 나는 바울파다.... 
이 말에는 나는 너보다 낫다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 지혜롭고 말잘하는 아볼로, 은사가 많고 교회설립자 바울을 자신들의 뒷배경으로 내세우는 것이기때문입니다. 
자신의 뒷배가 최고라고 하며 으시대고 자랑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런 모든 것이 부질없고 어리석다고 합니다. 
바울은 직설적이고 신랄하게 말합니다. 
&lt;부르심을 받아 그리스도인이 된 당신들이 육체적으로 뛰어난 것이 무엇인가? 육체적으로 지혜롭고 능하고 문벌 좋은 자가 몇이나 되는가?&gt; 
이 말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다수는 세상적으로 뛰어날 것이 없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 육체적으로 곧 세상적으로 뛰오난 것이 없는 이들을 부르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서로 자기가 잘 낫다고 자랑하며 형제자매들을 무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lt;왜 육체적으로 뛰어난 것이 없는 당신들을 부르셨는지 아는 가? 그것은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gt;라고 못을 박았습니다. 
현재 이 자리에 있는 것은 당신들의 뛰어남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이 자리에 있음을 분명히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마지막으로 자랑할 것은 주님 밖에 없다고 합니다. 우리가 내가 아니라 주님만을 자랑한다며 분열이 생길까요? 

 ♧ 사랑의 하나님, 오늘은 육체적으로 무능한 자를 불러 주신 하나님을 자랑하고, 무능하는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자랑하고, 
어리석은 나를 구원의 길로 이끌어가시는 성령님을 자랑하게 하소서, 성령님 강하고 담대하게 하소서, 아멘.]]></description>
			<author><![CDATA[향기나는교회]]></author>
			<pubDate>Mon, 13 Jul 2026 14:42:53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duftendekirche.kr/?kboard_redirect=1"><![CDATA[QT]]></category>
		</item>
				<item>
			<title><![CDATA[고린도전서 1:10-17 &lt;온전히 합하라&gt;]]></title>
			<link><![CDATA[https://duftendekirche.kr/?kboard_content_redirect=121]]></link>
			<description><![CDATA[고린도전서 1:10-17 &lt;온전히 합하라&gt;

 
10.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 고전 1:10-17에서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하나됨과 하나됨의 근거에 대하여 이야기합니다.
 
고린도교회는 바울의 복음을 듣고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들이 모여 세워진 교회입니다. 

그 교회가 분쟁으로 갈라졌습니다. 

서로 교회의 지도자들, 바울, 아볼로, 베드로를 자신들의 수장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서로 자신들이 더 우위에 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가장 우위에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겸손히 형제자매의 발을 씻기는 사람입니다. 

즉, 조용히 교회와 성도들을 섬기는 사람입니다(요13:12-15). 

 

교회는 누구의 것인가요? 교회는 어떻게 생겨났나요?

바울은 &lt;하나님의 교회&gt;라는 표현을 통해 교회가 하나님의 소유임을 븐명히 합니다(1:2). 

또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세워졌으며, 

그를 믿는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 모여서 세워졌음을 분명히 합니다(1:13).

 

바울도 아볼로도 베드로도 인간 그 누구도 인간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히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세례를 받은 우리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위에 그리고 죄사함의 세례를 통해 세워졌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의 기초위에 그리고 하나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교회에 속해있습니다. 

그런 우리가 분열되어야 할까요?

서로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서로 다른 모습을 취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서로 다른 지체이기 때문입니다(고전 12:12-31). 

우리 형제들을 보십시요. 서로 닮았지만 서로 다릅니다. 

뿌리가 하나이기에 같은 점도 있지만 다른 점도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같은 뿌리이기에 우리는 하나이지만 또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가는 역할을 감당하는 서로 다른 점들도 있습니다. 

다른 것은 누가 우위에 있는가를 결정하는 기준이 아니라 누가 무엇을 할 것인가의 기준이 될 수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모습, 다른 생각을 가졌지만 하나의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분의 십자가를 통해, 그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음을 통해 하나님의 교회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맙시다. 

다양성을 인정하고, 분쟁, 분열하지 맙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은 나뉘어지지 않았습니다(13).

 

♧ 세상을 위하여 아들을 내어주신 하나님, 세상을 위하여 자신의 몸과 생명을 내어주신 예수님, 서로 사랑하고 섬기게 하소서, 
당신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던 것처럼 발을 씨기는 겸손과 섬김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성령님 강하고 담대하게 하소서, 아멘.]]></description>
			<author><![CDATA[향기나는교회]]></author>
			<pubDate>Mon, 13 Jul 2026 14:35:54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duftendekirche.kr/?kboard_redirect=1"><![CDATA[QT]]></category>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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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고린도전서 1:1-9 &lt;교회는 하나님의 소유&gt;]]></title>
			<link><![CDATA[https://duftendekirche.kr/?kboard_content_redirect=120]]></link>
			<description><![CDATA[고린도전서 1:1-9 &lt;교회는 하나님의 소유&gt;

1.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과 형제 소스데네는
2.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 바울은 하나님을 향한 열심으로 가득했던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을 하나님을 모독하는 이단이라고 믿었기에 율법에 대한 열심을 따라 그리스도의 도를 따르는 자들을 박해하는 일에 압장섰던 사람입니다.
그 열심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율법을 향한 열심이 그리스도를 향한 열심으로 바뀌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불러 사도로 세우셨다고 고백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고백하며 뜻과 정성과 생명을 다해 충성합니다.
그 충성은 그가 복음을 전하여 세운 교회를 향해 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사도에 의해 세워졌기에 하나님의 것입니다.
바울의 것도 소스데네의 것도 그 누구의 소유도 아니라 하나님의 것입니다.

바울이 교회를 위해, 성도들을 위해 열심을 다해 충성하는 것은 그 교회가 성도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신 소유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가 교회와 성도들에게 정성을 다하는 이유, 다해야하는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소유이기 때문이며 우리기 곧 하나님의 소유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와 성도들을 자신의 것으로 착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도아닙니다.
그저 삯꾼이며 이단일뿐입니다.

하나님의 부름받은 사도로, 동역자로 하나님의 교회와 성도들을 위해 열심으로 정성을 다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 신실하신 하나님, 당신의 동역자로 세워주시니 감사합니다. 그 부르심에 합당한 역할을 잘 감당하게 하소서, 
열심으로 정성을 다하게 하소서, 성령님 강하고 담대하게 하소서, 아멘.]]></description>
			<author><![CDATA[향기나는교회]]></author>
			<pubDate>Mon, 22 Jun 2026 17:01:05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duftendekirche.kr/?kboard_redirect=1"><![CDATA[QT]]></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창세기 49:29-50:14 &lt;야곱의 유언&gt;]]></title>
			<link><![CDATA[https://duftendekirche.kr/?kboard_content_redirect=119]]></link>
			<description><![CDATA[창세기 49:29-50:14 &lt;야곱의 유언&gt;

29.그가 그들에게 명하여 이르되 내가 내 조상들에게로 돌아가리니 나를 헷 사람 에브론의 밭에 있는 굴에 우리 선조와 함께 장사하라

◇ 야곱은 아들들을 축복(?)하고 유언을 남깁니다.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할머니 사라, 아버지 이삭과 어머니 리브가, 아내 레아가 묻힌 막벨라굴에 장사지내 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잊지 않고 있는 야곱입니다.

야곱이 바로에게 자신의 130년 인생을 &lt;나그네 길의 세월&gt;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그 세월이 험악했다고 합니다(47:8-9). 
그후 죽기 전 요셉을 불러 요셉의 아들들을 축복하며 요셉에게 은혜를 입었다고 합니다(47:27). 
고센땅에서 살았던 17년은 야곱에게 행복한 시간입니다. 
130년 나그네의 길과는 비교할 수 없는 안정되고 풍요로운 시간이었습니다. 
17살에 잃었던 사랑하는 아들 요셉과 마지막 17년을 함께 지낸 것은 아버지로서 가장 큰 행복이었을 것입니다.

이런 야곱이 마지막 남긴 말은 가나안 땅 막벨라굴에 자신을 장사지내달라는 것입니다. 
아내와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기 묻힌 곳. 바로 그 곳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입니다. 
야곱은 풍요와 행복속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유언을 통해서 아들들에게 그 약속을 잊지 말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난 중에는 하나님을 원망하며 떠나고, 풍요 속에서는 풍요함에 취해 하나님을 잊는 것이 인간 일반의 모습인 것 같습니다. 
오늘 나의 모습은 어떤가요? 
고난 중에서 혹은 풍요함 속에서 어떤 상황에도 하나님을 기억하고 순종하고 있나요?

♧ 선하고 의로우신 하나님, 야곱처럼 마지막까지 하나님의 약속을 잊지 않게 하소서, 
그 약속을 자손들에게 마지막까지 전하게 하소서, 성령님 강하고 담대하게 하소서, 아멘.]]></description>
			<author><![CDATA[향기나는교회]]></author>
			<pubDate>Mon, 22 Jun 2026 16:54:55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duftendekirche.kr/?kboard_redirect=1"><![CDATA[QT]]></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창세기 49:1-28 &lt;야곱의 축복&gt;]]></title>
			<link><![CDATA[https://duftendekirche.kr/?kboard_content_redirect=118]]></link>
			<description><![CDATA[2.너희는 모여 들으라 야곱의 아들들아 너희 아버지 이스라엘에게 들을지어다

◇ 창 49:1-28은 야곱(이스라엘)이 아들들을 축복하는 장면입니다.
야곱의 축복에는 각각의 아들의 성품과 과거행위에 대한 평가가 담겨있습니다.
그 중에 특별히 레아의 아들들 첫째부터 넷째 아들까지 르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에 대한 축복(평가)이 눈에 띕니다.

장자인 르우벤에 대해 야곱은 그가 자기의 능력이며 기력이고 위풍과 권능이 탁월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르우벤은 탁월하지 못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유는 그가 아버지의 침상을 더럽혔기 때문입니다.
물의 끓음같이 자신의 정욕을 참지못하고 아버지의 첩을 범하였습니다(35:22).
육체의 정욕을 다스리지 못한 르우벤은 장자의 권한과 위상을 잃고 맙니다.

둘째 셋째아들은 세므온과 레위는 이스라엘백성들 중에 흩어지고 나누어질 것이라고 합니다.
자신의 지파를 유지하지 못하고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분노를 다스리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시므온과 레위는 여동생 디나가 당한 폭력을 더 무자비한 폭력으로 갚았습니다.
할례받은 세겜사람들을 살육하고 노략질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분노는 죄와 불의에 대한 정의의 심판실현을 위함이지만 이들의 분노는 자신의 욕구와 보복을 위한 도구였습니다.
그 결과는 공동체를 위기에 빠뜨리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후에 시므온 지파는 유다지파 안에 더부살이를 하다가 흡수되고(수9:1-9), 레위지파는 48개의 도성에 흩어지게 됩니다.
분노를 다스리는 것이 우리 삶의 결과를 결정지을 수 있습니다.

넷째 아들 유다는 사자와 같다고 합니다.
다른 형제들의 왕이되고 형제들을 다스리게될 것이라고 예언하며 축복합니다.
유다는 베냐민이 위기에 처했을때 그를 대신하려고 희생을 자처했습니다.
십자가 희생정신을 행하는 유다에게 복된 미래를 예언하고 축복합니다.

야곱은 아들들에게 모두 동일한 축복을 하지 않았습니다.
장자라고해서 더 크고 좋은 축복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의 행동에 걸맞는 예언을 하고 축복을 하였습니다.
주님의 축복은 우리의 행위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 선하고 의로우신 하나님, 야곱의 예언과 축복 원리를 통해 하나님의 축복 원리를 봅니다.
우리의 행위를 우리의 삶의 모습을 되돌아보며 바로 잡을 수 있게 인도하소서,
성령님 강하고 담대하게 하소서, 아멘.]]></description>
			<author><![CDATA[향기나는교회]]></author>
			<pubDate>Mon, 22 Jun 2026 16:50:55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duftendekirche.kr/?kboard_redirect=1"><![CDATA[QT]]></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창세기 48:8-22 &lt;나도 안다 아들아 나도 안다&gt;]]></title>
			<link><![CDATA[https://duftendekirche.kr/?kboard_content_redirect=117]]></link>
			<description><![CDATA[10.이스라엘의 눈이 나이로 말미암아 어두워서 보지 못하더라
 요셉이 두 아들을 이끌어 아버지 앞으로 나아가니 이스라엘이 그들에게 입맞추고 그들을 안고
19.그의 아버지가 허락하지 아니하며 이르되 나도 안다 내 아들아 나도 안다 
그도 한 족속이 되며 그도 크게 되려니와 그의 아우가 그보다 큰 자가 되고 그의 자손이 여러 민족을 이루리라 하고

◇ 창 48:8-22절은 야곱이 요셉의 두 아들에게 축복하는 장면입니다. 
야곱도 늙어 이삭처럼 눈이 어두워졌지만 야곱은 이삭과 달랐습니다.

성경은 친절하게 야곱이 눈이 어두워 앞을 보지 못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요셉은 친절하게 큰 아들은 야곱의 오른 손, 작은 아들은 야곱의 왼 손에 닿도록 앉혔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오른 손은 작은 아들 에브라임에게 얹고, 왼 손은 큰 아들 므낫세에게 얹어 축복하려하였습니다. 
이에 요셉이 아버지에게 장자와 차자를 알려주며 바꾸려했지만 야곱은 요셉에게 말합니다.
나도 안다 아들아 나도 안다

야곱은 눈이 어두워서 실수로 손을 바꾼 것이 아니라 알고 그렇게 의도적으로 한 것임을 분명히 밝힙니다.

요셉은 차남이 장남보다 능력과 권세, 특별한 은총을 받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당시의 관습과 전통에 따라 장남에게 특별한 축복과 은총이 있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는 인간들의 관습과 전통에 매여있지 않음을 성경은 보여줍니다. 
장남과 차남의 자리가 바뀌는 것을 창세기는 반복해서 보여줍니다.(이삭과 야곱 25:23; 베레스와 세라 38:27-30)

하나님의 역사는 인간의 관습이나 질서를 넘어 그의 주권과 섭리로 이루짐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야곱의 육신의 눈은 쇠약해져서 어두웠지만 영의 눈은 어둡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수 있는 영의 눈은 밝게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 세상을 주관하시는 주님, 우리는 세상 속에 살아갑니다. 인간이 만든 관습과 전통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하나님,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소서,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알 수 있는 영의 시력을 잃지 않게 하소서, 
육체의 눈은 어두워지지만 영의 눈은 밝아지게 하소서, 성령님 강하고 담대하게 하소서, 아멘.]]></description>
			<author><![CDATA[향기나는교회]]></author>
			<pubDate>Mon, 22 Jun 2026 16:43:54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duftendekirche.kr/?kboard_redirect=1"><![CDATA[QT]]></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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